2007년 1월 21일 일요일 한낮에 자살한 가수 유니미니홈피에 있는 Today is...
3집 앨범 발매를 하루 앞둔 시점에 생을 마감한 주인 없는 미니홈피에 덩그마니 떠있는 오늘의 기분이다. 가수에게 앨범 발매는 자신의 혼과 다름이 없다. 책 한권을 탈고한 뒤에 서점에 내놓는 작가나, 직접 도안한 옷을 매장에 거는 디자이너의 기분이 이와 같을 것이다.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내어 놓느라 너무도 숨가빠서 외로울 틈이 없었을 터인데 계속 외롭다고 호소한걸 보면 3집이 그녀가 추구하던 싶었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컨셉이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섹시가수라는 닉네임을 달고 누리꾼들의 입방아에 거칠게 오르내리던 그녀가 화려한 겉모습과는 반대로 외로움을 호소하며 세상을 등진 것도 충격인데, 마지막 가는 길인 장례식장이 너무도 쓸쓸해 그냥 화면으로만 보는 데도 마음이 짠하다.
학교사회에서 왕따가 있듯이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사회에서는 더한 왕따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늙으면 자연히 죽음의 강을 건너게 되는 호상도 아니고, 오랫동안 앓아온 지병으로 병사한 것도 아닌, 젊은 나이에 덜컥 세상을 등진 자살인데 이렇게 소외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미치니 더욱 그렇다.
아무리 반푼어치 인맥을 형성 못하고 살았다고 해도 그렇지, 마지막 가는 길이 아닌가? 죽음을 앞에 두면 모든 게 너그러워지는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자고로 경사는 챙기지 못해도 초상은 꼭 챙기라고 했다. 생전의 잘잘못을 떠나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면 꽃 한송이라도 놔주는 게 산자의 도리가 아닐까?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중2때부터 탤런트생활을 시작해 유니로 개명해 섹시가수로 활동하기까지 그녀의 연예인 경력은 10년을 넘는다. 그렇다면 대인관계가 아무리 꽝이라고 한들 한솥밥을 먹으며 연속극을 한 사람들, 같은 오락프로에 나와 함께 희희낙락했던 고정패널들만큼은 친하지 않더라도 호상이 아닌 악상에 한번쯤 얼굴을 디밀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의 경우 유니가 영향력 있는 집안이었다면 모두들 그렇게 지금처럼 옆 집의 개가 죽었나 할 정도로 모른척 했을까? 피디도 아닌 피디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너도나도 얼굴도장 찍으며 조문하던 모습과는 천양지차라 마음이 씁쓸하다. 가수협회는, 탤런트협회는 이익만 대변할 때만 한목소리 내고 이렇게 개인 회원의 조사에는 무관심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학교사회에서도 친목회라는게 있어서 평소의 친한 정도를 떠나 경조사에는 꼭 참석을 한다. 특히 상을 당한 일이라면 밤을 함께 새면서 유가족을 위로한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상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평생 그들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얼굴만 살짝 비쳐주는 조문이라도 그 일이 망자와 살아남은 자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아빠의 장례식때, 장지가 경상도가 아닌 충청도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대형차를 대절해 아버지가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해준 지인들에게 난 아직도 고마움을 갖고 있다. 평소에 즐겨 피시던 담배와 화투를 넣어주며 저승에 가서도 실컷 노시라고 웃음 짓던 지인들, 그래서 한결 마음이 놓였었다.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엄마에겐 융통성 없는 양반이라는 퉁박을 듣는 아빠였지만 늘 진실하게 살라던 아빠의 삶은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바쁨을 뒤로하고 넉넉한 웃음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주던 지인들을 보면서...
천년만년 살고자해도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게 죽음인데 유니는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자살은 이제 개인의 일로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벌써 우리나라는 ‘10만명당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로 어느 새 ‘자살이 많은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2003년에 한반도를 강타한 자살신드롬이 연간 자살 1만명 시대를 앞당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명인사들의 잇단 자살은 베르테르현상을 불러일으켜 2005년도에는 영화배우 이은주가 죽은 뒤에 자살자수가 2.5배나 늘었고, 유니가 죽은 바로 뒷날 초등학교 5학년생이 텔레비전을 그만보고 공부하라는 엄마의 꾸지람에 방에 들어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 베르테르현상이란 스타나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 병리현상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시기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이혼이나 가정불화, 학교생활 부적응 등으로 매우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모방자살은 청소년은 물론 20대 젊은 층에게 전염성 강한 독버섯이라고 한다.
그래서 걱정이다. 자살원인도 다양해져서 과거의 생계형과는 달리 염세비관이 44%로 가장 많다고 하지 않는가? ‘다 자란 사람’인 어른도 세상이 안겨준 버겨운 짐을 감내하기 힘들면 생을 놓아버리는 통에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홧김에 가장 소중한 목숨을 저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늘 아이들과 부대끼며 사는 나로서는 어린시절 미혼모의 딸로 상처를 받으며 커온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유니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많이 아프다. 외롭다는 투정한번 못 부리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도 모자라 가는 길마저도 유난히 외로와 보였던 유니의 영정이 아직도 눈 앞에 어른거린다. 그토록 외로워한 그녀에게 누군가 붙잡아 줄 한 손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지 않았을 것을...
지금도 어디선가 유니처럼 애타게 손잡아주길 바라는 외로운 사람은 없는지 옆을 돌아보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더 이상 햇빛이 아닌 그늘에서 외로워하는 이들이 없도록,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일이 없도록,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고 함께 손잡아 일으켜주고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