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선생님이 불렀다. 지망하지 않은 학년이지만 6학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학생수가 적어서 완전학습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진정한 제자가 생기게 되니 이번 참에 해보라고 설득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원하지도 않는 학년을 줄 수 있느냐고 펄펄 뛰었다. 1지망이 안되면 3지망에 해당하는 학년이라도 달라고.
우리 학교는 저․중․고로 서로 돌아가면서 학년을 맡는다는 인사원칙을 정했다. 누구는 저학년만 맡느니, 누구는 고학년만 맡느니 하는 불평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가 교사들에게 거의 자율권을 주는 앞서가는 학교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학년말이 되면 새학년도에 맡고 싶은 담임 신청을 받는다. 1지망에서 3지망까지. 모두들 담임배정 원칙을 알고 지원하기에 3지망 중의 하나는 걸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안될 때가 있다. 이리저리 꿰어맞추다보면 한둘은 원하지 않는 학년에 꼽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관리자는 그 사람만 특별히 불러서 부탁을 한다. 이번만 한번 양보하라고. 작년에는 후배가 자기가 가르친 아이들을 끌고 올라가야하는 연임케이스에 걸려서 입이 한 대빨은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 학년을 배정받아 한동안 입이 퉁퉁 불어있어야 했다.
6학년은 가족의 구성원으로 치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맏이라고 할 수 있다. 식구들의 지나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맏이이기에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각종 행사에 참여해야할 일도 많다. 내가 맏이로 자랐기에 ‘장’자가 갖는 부담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바로 밑의 5학년은 같은 고학년이지만 형의 그늘 아래서 책임질 필요가 없어서 차라리 맘이라도 편하다. 하지만 6학년은 학교의 얼굴마담으로 늘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한다. 그렇지만 무거운 책임감과 압박감만큼 보람은 그 어느 학년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만만찮은 나의 교직생활 중에서 가르침의 추억은 모두 6학년에 몰려있다.『누가 우리 쌤 좀 말려줘요』라는 내 첫 창작동화도 6학년을 맡아 가르칠 때의 추억의 산실이다. 어촌에서 농촌에서 산촌에서의 얘기는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하여 다른 사건과 접목시켜서 탄생시킨 작품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가르칠맛 나는 6학년 담임을 해보리라 늘 맘속에 담고 있었다. 하고 싶은 학년이었지만 책임감에 피하고 싶은 이 이중성이라니?
초등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교사가 어느 학년은 되고 어느 학년은 안된다는 것은 어패가 있지만, 그래도 교사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는지라 저학년에 적합한 선생님이 있고 고학년에 더 적합한 선생님이 있다. 내가 나를 스스로 평가할 때 나는 고학년에 더 적합한 선생님 쪽에 속한다.
따라다니면서 손톱만한 일까지 챙겨줘야하는 사소함의 극치를 달리는 저학년은 나의 단세포적인 생활태도와 거리가 멀다. 머릿속에 든 지식의 양보다 잡다하게 챙겨야할 일이 더 많은 까닭에 건망증이 심한 내가 잔일을 놓치는 까닭이다. 아무리 내가 할 일을 메모지에 적어도 잔손가는 일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일일이 알림장 써줘야 하고, 나눠주는 유인물이 몇 장인지 확인해야 하고, 매일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하는 일은 난이도 높은 공부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어렵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 저학년에겐 열을 내었다가는 괜한 내 복장만 터진다.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예쁘다. 착착착 감겨들기 때문이다. 저 먼 곳에서라도 선생님의 모습만 보이면 뛰어와서 안기기 바쁘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쳐도 아이들은 선생니임하면서 치맛자락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맛에 피곤함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함께 순수해진다.
하지만 고학년은 다르다. 착착 감기기는 커녕 니멋 내멋도 없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몽땅 퍼부어줄수 있기에 가르칠 맛이 난다. 따끈따끈한 조간신문 기사를 소재로 삼고 그 어느 것으로 양념을 쳐도 척척척 받아들인다. 유인물을 챙겨주지 않아도 무엇을 빠트려도 자기네들이 다 알아서 해결하는 탓에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안써도 된다. 공부시간만 제대로 챙겨주면 된다. 그래서 믿거니 한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저학년 때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리 아이 어쩌면 좋을까요하면서 전전긍긍해대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면서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1학년이 되면 학부모도 선생님도 1학년이 되고, 6학년이 되면 학부모도 선생님도 6학년이 된다.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6학년 담임,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내 맘속의 소망을 어떻게 알고 미리 앞당겨 6학년 담임을 맡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나도 6학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는 예비공부를, 나는 못다 마친 대학원공부와 멀리 했던 책들을 가까이 하는 계기를...
얘들아, 올해는 너희들도 6학년이고 나도 6학년이니 누가 더 공부 잘하나 내기하자. 체력에서는 너희들이 우세고, 지적능력은 내가 좀 나으니까 출발선은 쌤쌤이다. 자, 목표 지점을 향해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