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학년 담임을 6년만에 맡았다. 그동안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3학년 담임을 하지 않았었다. 오랫만에 3학년 담임을 맡게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오랫만에 3학년을 맡은 탓인지 학기초 며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부서업무에 담임업무까지 여러가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나날이었다. 이런 와중에 학기초면 항상 해야 하는 일을 잊고 지나가 버렸다. 다름아닌 학생사진 수합이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비치하는 학생사진첩을 만들고 교무수첩에도 붙여야 하는데, 그냥 시간이 지나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사진첩을 제출해야 하는 날짜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지만 뒤늦게 사진을 수합하자니 왠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방과후에 교실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직접 찍기로 했다. 미리 학생들에게 예고를 했다. 당장 내일 방과후에 사진을 찍겠다고,,,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의 반응은 딱 두가지로 나누어졌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오기 때문에 사진관에 가서 찍겠다는 쪽과 사진을 그냥 찍겠다는 쪽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사진을 직접 찍어오겠다는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하도록 했다. 대략 학급생들의 1/3정도가 그들이었다. 나머지 2/3는 그대로 찍기로 했다. 다음날 종례를 마치고 예정대로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여 한명씩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사진수정프로그램을 통해 적당히 예쁘게 수정을 했다. 얼굴에 점이 있는 학생들의 점을 제거하고 머리가 긴 학생들은 머리를 예쁘게 수정했다. 이 사진을 보고 학생들이 한마디 했다. '뽀샤시를 참 잘 하셨네요' 사진을 수정한다는 표현으로 학생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물론 실제로 그와 유사한 메뉴가 프로그램에 있기도 하다.
그렇게 직접찍은 사진과 나머지 학생들이 사진관에서 찍어온 사진을 이용해서 사진첩을 만들었다. 물론 사진관에서 찍어온 사진은 좀 번거롭긴 해도 스캐너를 이용하여 파일로 만들었다. 직접 가위로 일일이 오려 붙이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사진첩을 제출했더니 담당 선생님이 이렇게 하니 '참 깔끔해 보이네요'라고 호평을 했다. 시간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했다는 간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도 이렇게 하니 선생님이 사진 찍으면서 아이들 이름도 빨리 외우셨을 것 같아요. 좋은 방법인것 같네요'라고 한마디 더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진첩을 만들고 나서 그 사진파일을 혹시나 해서 컴퓨터에 보관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3월말에 환경미화 심사를 한다고 했다. 워낙 미적인 감각이 없는터라 어떻게 교실을 또 꾸며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담임을 해 왔지만 항상 부담스러운 것이 환경미화이다. 쉽게 이야기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맡기면 되지 뭘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중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느정도 담임교사의 코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때 갑자기 머리속에 번쩍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며칠전에 찍은 사진 생각이 난 것이다.
환경미화때마다 단골로 게시되는 것이 학급자치회 구성도이다. 물론 최근에는 게시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학급자치회구성도는 당연히 게시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냈다. 학생들 사진 하나하나를 한글 프로그램의 문서마당메뉴를 이용하여 모양을 냈다. 그것을 각 부서마다 배치하여 학급자치회 구성사진을 완성했다. 그럴듯한 모양이 되었다. 그것을 칼라 프린터로 인쇄하여 전지에 붙였더니 훌륭한 학급자치회구성도가 되었다. 완성한 것을 교실에 부착하고 퇴근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교실에 올라가보니 우리반 학생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다. 서로가 자기사진에 대한 평을 하느라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래도 자신들의 사진을 보면서 기뻐하고 웃고 떠드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사진은 실물보다 더 잘 나왔다는 학생들도 있었고, 실물에 비해 잘 안나왔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것을 당장 떼어내야 한다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면 학교에서는 최고학년인데, 천진난만[天眞爛漫]한 행동을 보니 이런 느낌이 바로 교사에게는 기쁨을 주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즐거운 일은 그 다음에 나타났다. 그날 이후로 나머지 게시물은 우리반 학생들이 스스로 해냈다. 교사가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인것이 주효했다는 생각이다. 역시 교육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 번 느낀 학기초의 한달이었다. 우리반 학생들 모두 건강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