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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 마지막 어린이날인데 선물 주세요"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덩치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커서 13살의 6학년이 형식상 초등학생이지 이제는 중학생으로 편제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이날 타령을 하며 선물 달라고 졸라댈 때는 영락없는 어린 아이다. 이상하게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마음을 짠하게 한다.

저학년 같으면야 학부모들이 바리바리 챙겨주는 형행색색의 선물이 넘쳐서 탈인데, 고학년은 다 컸다고 선물세례에서 멀어진 탓에 선생님인 내게까지 요청이 오는 것이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선물의 양 뿐만이 아니라 학부모님의 관심도도 마찬가지다. 갓입학했을 때는 자녀가 어떻게 학교에 잘 적응을 하고 있나 한번이라도 더 볼려고 교실 밖에서 기웃대는 일이 다반사인데 졸업할 학년이 되면 그저 잘하고 있으려니 발걸음을 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맏이는 그저 믿거니 하고 막내는 못미더워 챙겨주는 그런 모습과 진배가 없다.

내가 장녀로 자랐기에 맏이의 심정은 알고도 남는다. 동병상련 더하기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의 연민을 자극해서 그 말을 들은 이후 내내 선물을 뭘로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하지만 마음뿐 퇴근 후에도 놓을 수 없는 학교의 잡다한 일로 말미암아 선물을 사러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쇼핑은 나의 아킬레스건이기에 더욱 그랬다. 남들은 쇼핑이 스트레스를 푸는 지름길이라고 하더니만 난 도로 스트레스가 쌓여서 영 쇼핑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탓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 사기 위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쇼핑지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머리에 쥐부터 난다.

쇼핑 스트레스에 짬 없는 시간까지 박자를 맞추어 결국 아이들 선물을 사지 못했고 걱정만 한가득 안고 어린이날 기념 체육대회 날을 맞았다. 행사주무로서 제반 일을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쫓기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아이고 선물’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빠왔다.

그래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응원하는 틈을 이용해 문인협회 일로 자주 이용하는 학교 앞 문방구에 전화를 걸었다. 다짜고짜 문화상품권이 있느냐고 물었고 미안하지만 배달까지 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그러겠다는 말에 얼마나 기쁘던지. 비로소 무거운 마음에서 풀려난 나는 아주 기분좋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말야, 어린이날이라고 선물을 사준 역사가 없는데 말야, 특별히 너희들한테만큼은 마지막 어린이날이고 해서 문화상품권을 준비했어.”

선물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고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짜릴까?”
“1,000원짜리 아닐까?”
“야, 천원짜리 상품권이 어디 있냐?”
“설마 오천원?”

6학년 아이들이라 그런지 역시 계산이 빠르다. 반 아이들이 20명이니까 5,000원짜리를 산다면 10만원이란 거금이 드는데 설마 선생님이 그걸 샀을까 하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저학년들은 어떤 선물을 주든 값의 고저를 떠나 마음에 드는지 안드는지를 따지는데 고학년들은 수셈이 빨라서 선물하는 사람의 주머니사정까지 고려해준다.

“우와, 오천원짜리다.”
“역시 우리 선생님이라니까.”
“이래서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단 말야.”

마지막 어린이날이라고 하도 애걸하기에 주머니를 털어서 선물한 것뿐인데 이렇게 존경하는 선생님이란 소리를 듣고 참 선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평소에는 머리가 컸다고 입만 나불대어서 끼어들지 말라, 귀담아 들어라, 넘치지 말라, 상황판단을 잘해라, 온갖 잔소리를 해대는 내게 진저리를 내는 아이들인데 변변찮은 선물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니 말이다. 환한 웃음을 머금고 끼리끼리 어깨동무하며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 켠이 짠해온다.

늘 나보다 바쁜 아이들, 중학교 공부를 한답시고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죽치고 있어야 하는 아이들, 주말도 여전히 과외로 바쁜 아이들, 자연 속에서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놀아야 할 어린 나이에 학교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작금의 교육현실이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얘들아, 문화상품권은 무뚝뚝한 선생님의 진심이 담긴 선물이란다. 이번 어린이날 만큼은 공부 또 공부에서 벗어나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실컷 뛰어 놀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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