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8시가 되면 교실 문을 여는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꼬마들이 벌써 여럿입니다. 1학년 꼬마들은 아침이면 내게 다가와 미주알고주알 쫑알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아이들과 나도 함께 이야기하며 까만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는 기쁨을 포기한 채, 도서실에 들어선 것처럼 인사말도 없는 목례하기, 발소리 안 내기, 책장 넘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꼬마들의 작은 몸짓은 귀여움 그 자체랍니다.
우리 학교는 아침 독서 시간을 `사제독서`의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공붓감으로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곁에서 책을 펴놓고 책을 읽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바쁜 공문서를 처리하거나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마저도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책을 폈습니다. 내가 일을 하며 조용히 책을 보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따르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오늘부터는 아예 다른 일은 다 던지고 아이들처럼 책을 폈습니다.
발소리를 줄여가며 등교하는 아이들과 조용히 눈인사를 하고 책을 꺼내고 읽을 때까지 곁에 가서 책을 읽고 서 있는 나를 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목소리를 줄입니다. 40분 가까이 책을 보는 동안 몇몇 아이들은 힘들어서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화장실 타령을 하지만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을 눈치로 압니다.
아직 글씨를 다 깨치지 못한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구경하지만 그래도 책 구경에 그치는 한이 있어도 안 보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었습니다. 20명 중에 18명이 일찍 와서 책을 읽었고 15명이 진지하게 몰입하는 장면이 참 신기했습니다. 말로 하면 잘 따르지 않는 아이도 몸으로 보여주면 말없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혹시라도 발소리를 내거나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는, 곁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00야,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싶은데 네 목소리가 커서 방해가 되거든? 아마 다른 친구도 그럴 거야. 조금만 조용히 해 주겠니?” 하고 타이르면 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8시에 출근을 해서 아이들처럼 40분 동안 책을 읽는 시간을 꼭 지키겠다고 자신과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사제독서 덕분에 차분한 분위기가 수업과 연결되어서 아이들의 집중도도 매우 높았습니다. 단 몇 초를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떠들고 장난치는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모습에 신기해하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도 책을 보세요?” “그럼, 선생님은 책을 참 좋아하거든? 책 보는 시간이 참 행복하단다.”
가끔 학부모님께서 자신의 아이에게 책 보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상담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그게 뭔데요?” “오늘부터 어머니께서 텔레비전을 끄시고 거실에 상을 펴놓고 책을 읽으시 면 됩니다. 그 방법보다 더 좋은 비결은 없답니다. 엄마는 텔레비전 보면 서 아이에게는 공부해라, 독서해라 하는 것은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으니 까요.”
아침독서 덕분이었는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차분한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 1학년 친구들이 책을 잘 읽어서 별점도 주고 찰떡도 하나씩 입에 넣어줄 거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요. 불량식품을 먹으면 이가 썩을 텐데 떡은 배도 고프지 않고 몸에 좋아요.” “와, 선생님이 우리 엄마 같다!” “떡이 참 맛있어요!”
제비 새끼처럼 입을 쫙 벌리고 떡을 기다리는 요 녀석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스트레스로 눈이 충혈 되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순간들이 나를 다시 살게 합니다. 퇴근 후에 집에 오자마자 남기는 교단일기를 쓰며 반성과 웃음이 교차하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제 나름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마음을 키우는 사제동행 독서시간을 위해서는 아이들보다 나의 결심과 용기가 더 필요함을 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알찬 독서를 위해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잔잔히 들려주며 아이들과 함께 책으로 아침을 여는 시간에는 창밖의 참새들도 부러운지 시계탑 위에 앉아서 노래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