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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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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30년 전의 제자들과 만남


하늘이 매우 높고 파랗다. 아직 장마철인데도 먹구름이 모두 사라졌다. 완전히 쪽빛으로 물든 하늘에 하얀 솜털 같은 뭉게구름이 온갖 그림 그려가며 둥둥 떠 있다. 아직 장마가 가지 않아 어제 밤까지도 비가 왔었는데 아침 대기가 정말 쾌청하고 싱그럽기만 하다. 멀리 모악산 정상이 뚜렷하게 보일만큼 공기가 맑아 가시거리가 멀었다.

내일이 초복,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는데도 내 마음은 무척 들떠 더위쯤은 아랑곳없다. 31년 전 3년차 경력 초년교사인 내가 첨으로 담임했던 6학년 제자들이 서울에서 오는 날이다.

요즘같이 어렵고 각박한 시대에 어릴 적 코흘리개 제자들 10여명이 작년에 이어 또 1년 만에 다시 찾아온다니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 밤, 운동회 하기 전날 밤, 생일날의 전날 밤 등 손꼽아 기다리던 좋은 날을 앞둔 밤에는 잠을 이루기조차 어려웠던 것처럼 그런 설렘과 기다림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밤이었다.

이제 40대 중반의 중량감 넘치는 장년이 되어 제자라기보다 친구 같은 모습이다. 밝은 미소와 따뜻한 정감 넘치는 손잡음으로 재회의 기쁨을 가슴 속 깊이깊이 다독거려 채웠다. 마음 같아서는 힘차게 포옹하면서 정 표현을 크게 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쑥스러움 때문에 악수로 대신했다.

친구 같은 그들을 어린 꼬맹이 아닌 어른으로 대접하려면 우선 호칭이나 말투부터 고쳐야 했다. 중고교생 자녀를 두고 있는 그들을 마냥 어린애들 같이 대우를 해서는 예의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천진스럽고 순박하며 철없던 개구쟁이 시절 30년 전 분위기가 이뤄 질 것 같지 않아 이내 포기해버렸다. 우리들이 이렇게 만날 때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고 또 흘러가도, 아무리 늙어 호호백발이 되어버려도 우린 영원한 꼬맹이와 초년교사인체 과거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말했다.

30여 년을 거슬러 당시의 크고 작은 사건이나 일상들을 들을 때마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망각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연의 총량이 오늘 단 하루에 있었던 양보다도 적을 것 같았다. 제자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억상실증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엄하게 꾸중하고, 무섭게도 종아리 엉덩이 손바닥을 매로 때렸단다. 얼마나 야속하고 밉고 원망스러웠을까! 그저 열정 하나만으로 막무가내로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던 우둔한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런데도 어느 학부모한테도 단 한번도 항의를 받거나 원망을 들은 것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운이 좋았던지 좋은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같으면 목이 열개라도 배겨내지 못할 테니까.

처음으로 제자들과의 만남에 초대받은 집사람도 무척 흐뭇한 표정이었다. 신혼의 단칸방에 철없이 찾아오던 꼬맹이들이다. 서너 명씩 어울려 그 좁고 어설펐던 단칸방을 찾은 꼬마손님들이었기에 집사람의 감회도 새로웠을 것이다. 졸업을 하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들에 대한 집사람의 기억은 언제나 생생했었다. 오히려 나보다도 그들의 소식을 더 많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웠기에 점심시간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가져오게 했었다. 그 당번들과 어울리는 친구들이 자주 우리 집을 찾아왔던 것이었고 집사람과도 꽤 가까울 수 있었던 것이다.

두세 시간의 점심 식사와 대화를 마치고 김제 심포 앞 새만금 갯벌을 보러 갔다. 모두 장수 산간지방 태생들이라서 넒은 만경평야와 바다 그리고 갯벌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만금 갯벌의 황량하게 메말라버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새만금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기대하기도 하면서 예전 같으면 배나 타고 가야했을 섬까지 차량으로 말라버린 갯벌길을 다녀왔다.

그냥 찾아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작년에 이어 또 좋은 선물을 받았다. 예쁘고 귀하고 정성 가득한 선물이다. 우리 부부 함께 입으라는 개량 모시 한복 두 벌 이었다. 한복 전문가답게 디자인, 색상, 크기 모두 최상급이었다. 아직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그런 옷이었다. 받아서 좋긴 하지만 번번이 큰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사전에 선물하지 말라는 부탁도 했었는데, 차라리 그런 경비를 모아서 시골의 후배들에게 좋은 일을 하라는 부탁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라면서, 앞으로는 그런 쪽도 생각해 보겠다면서…….

그 때 좀더 열성을 다하고 진심을 담아서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보다 적당하게 편안하려 했던 이기적인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참다운 교육을 했다기보다 지식의 전달자 역할만을 했던 것도 부끄럽다.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들어주고 도와주기 보다는 윽박지르고 물리적 제재를 가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했던 것들도 뉘우쳐 진다. 그렇게도 모순투성이였고 스승으로써의 부족했던 나를 오히려 감싸주고 덮어주는 이 제자들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참다운 삶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정말 고마운 제자들(현주,창주,혜옥,현자,세권,송자,남열,재영,순희,옥선,명수)에게 감사의 말을 이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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