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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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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얘들아, 선생님도 숙제 했거든?

여름방학이 끝자락을 보이는 아침이다. 27년 교직 생활 동안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이번 여름방학이 처음이다. 그것은 내 영혼에 안식년을 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이제 어디에서 멈춰야 할 것인지, 앞으로 더 나아 가야 한다면 건강 상태는 어떤지, 어떤 힘을 비축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대안을 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부터 시작된 사회생활의 경력으로 따진다면 35년 간 줄기차게 달려온 셈이다. 기계로 친다면 중간에 몇 번쯤 부속품을 갈아줘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폐경기를 지나면서였다. 2년 가까이 식은땀이 흐르고 어깨가 빠질 듯 아프며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것은 물론, 때로는 우울증에 가까운 인생의 허무감으로 힘들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자각이 든 것은 그 때였다. 건강에도 자신이 없어지고 삶에 대한 의욕까지 낮아져서 매사에 심드렁해진 나를 추스르기 위해서는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동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다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3년 동안 방학 때마다 전문직 도전을 위해 교육 서적을 사서 읽고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활자 속에 나를 가두고 앎의 기쁨에 젖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퇴근 후에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며 메모하고 암기하며 학생이 되어 행복을 만끽한 것이다.

공부하는 일만큼, 책을 보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비록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내가 얻은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몸무게가 정상체중으로 돌아온 점이다. 10년 전 몸무게로 돌아가더니 아픈 곳도 없어졌다.

정신을 다이어트 하고자 했는데 육신까지 감량하는 보너스를 얻은 셈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하고 음식을 소식하며 간식을 없앴던 것이 큰 효과를 본 것이다.

이제는 공부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서 방학 때나 시간이 나면 전용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하게 되었다. 신문을 읽고 신간 서적을 읽으며 나태해진 나를 곧추 세우는 ‘배우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도서관에 가면 새파랗게 젊은 학생들 속에 끼인 아줌마 학생인 나는 도서관 냄새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번 방학 동안 나를 위한 휴식년제를 위해 공부를 선택하여 얻은 두 번째 보람은 ‘만 권 프로젝트’이다. 그 동안 읽었던 책을 제외하고 다시 독서 목록을 작성하고 독서 노트를 장만하여 만 권을 읽겠다는 약속을 나 자신과 맺은 것이다.

만 권을 읽으니 글이 술술 나왔다는 당나라의 시인 두보에 관한 글을 읽고 본받고자 함이다. 무모한 계획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30년 가까이 읽어야 하는 분량인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좋아하니 글이 술술 나올 수만 있다면 지금부터 30년을 투자할 생각이다. 책을 읽으며 독서 노트에 감동적인 부분을 적어가느라 속도가 나지 않지만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기에는 쓰는 방법 이상 없다.

나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어느 해보다 알찬 방학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내가 쓴 독서노트를 자랑하리라. 선생님도 숙제를 했노라고. 그렇게 읽은 책의 내용은 내 것이 되어 아이들에게 재투자 되는 것이다.

개학을 기다리는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넘쳐나고 2학기를 팽팽하게, 씩씩하게 보낼 계획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집을 마친 나의 글들을 여름 방학 동안 묶어서 여섯 번 째 교단 에세이로 출판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만나는 내 반 아이들에게 내 책을 선물하는 기쁨을 교단에서 내려서는 그날까지 누리고 싶다. 책은 늘 내 인생의 스승이다. 위대한 영혼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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