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환경이 바뀌어지면서 우리들의 의식상태도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는데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기주의에 팽배해 져 있고, 미래에 주인공들도 인간으로써의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바른 생각과 태도가 점차 상실되고 있다. 과거에는 스승과 어버이 명이라면 지상의 과제로 여기고 효행은 최고의 본분으로 생각하며 덕을 쌓으면서 순응해 가며 살아왔다.
지나친 생각 일인지는 모르지만 요새 아이들 중 내 아이나 남에 아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맛있는 음식 앞에서 ‘엄마 먼저. 누나 먼저’하며 권유하는 아이, 음식을 남겼다 주었을 때 감사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과연 몇%나 될까?
뭐든지 자기만 위해 먹거나 갖고 싶어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습성이다. 매사가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이다. 합리적인 생각보다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외 골수로 파고들어 1등을 하고 부모의 보상을 기다리는 아이 등등
또 운동장 한 바퀴 뛰기가 힘들다. 몇 아이 말고는 얼마 못가서 헐떡거리며 주저앉고 만다, 겉 모양새만 컷지 콩나물 같은 체력이다. 그 뿐이랴, 속마음까지도 나약해 지고 있다. 난이한 과제를 부여하면 생각도 해보지 않고 쉽게 포기한다.
끝까지 해 내겠다는 의지력도 부족하다. 그런가 하면 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예측할 수 없는 일 까지 발생하여 선생님과 부모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일도 종종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오늘의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이 폭 넓고 여유를 가지고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인간이 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친구와 이웃의 아품과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심성을 기대해 보려는 것이 어쩌면 미련한 생각 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바른 인간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국가)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갖고 지도에 임해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곳이 가정이고 그 다음 학교와 사회 순이다.
먼저 가정에서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바른 인간교육을 위해 지금까지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교육에 대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없이는 바른 인성을 가진 자녀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녀가 등교할 때 들려주는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선진국의 학부모와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영국의 부모들은 밖에 나가면 공중도덕을 잘 지키라고 하고, 미국의 부모들은 노약자를 보호하라고 하는가 하면, 일본의 부모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하는데 반해, 한국의 부모들은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 하라고 한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선진국의 학부모들은 지적인 면보다 바른 인성에 중점을 두는데 한국의 학부모들은 지적인 면을 강조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래에 필요한 인간은 지적인 능력이 20% 정도이고 나머지 80%는 인간성이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그 다음 학교에서는 바른 인간교육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의식 실태를 파악해서 그들에게 맞는 맞춤식 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인간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의 형태도 구태의연한 방법을 지양하고 생활주변에서 새로운 프로그램 구안과 활용이 시급히 요구되며,
끝으로 사회(국가)에서는 정의가 바로 서는 강력한 국법질서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각가지 사회규범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법이 있어도 그 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 치고, 죄 지은 사람이 돈만 있으며 보석으로 풀려나고, 그동안 교육정책을 비롯한 각종 실패한 국가정책담당자가 애국자라고 큰 소리 치고 심지어 국가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가 하면, 남을 위한 봉사와 희생한 사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고위 공직자와 사회지도층에 자리잡고 있는 이 사회 우리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이어지는 사회 각계각층의 현대판 거머리들이 공존하는 한 인간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 앞으로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힘을 모아 물귀신 소탕시키고, 바른 인간교육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그런 국가 지도자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