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처럼 편한 직장이 어디 있냐? 여름에도 겨울에도 방학이 있어 얼마나 좋냐? 놀아도 월급 나오고 정말 좋겠다.
내가 교사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소리들을 한다. 달력의 검정숫자가 찍힌 날이면 꼬박꼬박 일터로 나가야하는, 휴가래야 고작 피서철 일주일 정도가 고작인 직장인들에게는 학생들과 함께 방학을 즐기는 교사의 여유가 부러우리라.
그와 반대로 교사들은 방학은 없지만 연봉이 빵빵한 타직종의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특히 남교사들은 간만에 동창들이라도 만나고 오면 열에 아홉은 기가 팍 죽어온다. 누구는 뭘 하는데 연봉이 얼마고 빌딩을 올렸고 어쩌고 저쩌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공부도 못하던 코찔찔이가 사업수완은 있어서 성공했다며 공부 잘한 자기꼬라지가 요거라며 한탄을 한다. 돈을 도외시하고는 살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분만 가지고는 살 수 없음에야.
어쨌든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남이 이룬 것이 쉬워 보이지만 세상에 만만한 일이 어디메 있을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던, 사람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든, 이 세상에 쉬운 일 거저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연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쨌든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여름과 겨울방학은 축복의 선물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방학때만큼은 월급의 반을 털어서라도 배워야한다’는 고집을 갖고 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너는 그대로 실천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 늘 그런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은 한다. 늘 무엇이든 배웠던 그 동안의 방학생활이 그것을 증명한다.
멋모르던 새내기땐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연수만 배우러 다녔다. 그 당시 내가 혹해있던 분야가 매스게임이었기에 고런 유사한 분야만 섭렵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기피하는 종목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내게는 즐거운 일이었기에 운동회 때만 되면 물을 만난듯 신바람이 났다. 가는 학교마다 대환영을 해주니 아예 매스게임은 내 전담이 되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운동회는 지금의 해외교류와 비근할만큼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였기 때문에 매스게임에 특기가 있는 교사는 인기짱이었다. 그게 매력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배우러 다녔고 늘어난 연수 횟수만큼 나만의 노하우가 저절로 쌓였다. 그런 쪽을 자꾸 파고들다보니 재미가 붙어서 교원예능대회까지 나갔고 운이 좋아 교육감상까지 받은 경력도 있다. 숏다리에 짜리몽땅한 몸매가 이루어낸 기적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배움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젊었을 땐 개인기 하나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만능엔터테이너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못해 무작정 대들던 혈기왕성한 시기가 지나면 형평상 불리해도 참게 된다. 더욱 더 이상한 것은 하기 싫은 것도 자꾸 하다보면 정이 붙어서 되려 좋아했던 것보다 재미를 붙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중년의 나이에 제 맘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야 자기의 적성을 찾았다면서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는 모험을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정을 가진 사람은 토끼 같은 자식이 눈에 밟혀 못할게고, 혼자 사는 사람은 밥 먹여 줄 남편이 없어서 못할게고...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좋든 싫든 배움은 유익하다는 것이고, 어떤 배움이든 공짜보다는 제 돈내고 받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타율에 의해 찍혀 가야하는 연수라면 지옥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택한 것이라면야 즐거움이 배가가 되는 까닭이다.
제 주머니 터는 곳은 일단 강사진이 그 분야의 전문가라서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다. 법전처럼 갑갑한 내용의 책을 언제 다 보나, 하루종일 딱딱한 의자에 어떻게 앉아있나 하는 염려도 잠시 하루가 금방 가버린다. 수강자는 강사가 친절하게 먹여주는 밥을 꼭꼭 씹어서 머리 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니 이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냥 보내주는 연수는 재미가 없다. 학교 근무의 연장선이라는 압박감 플러스 점수에 신경써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 연수가 만약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연수라면 최악이다. 강사진이 우리와 똑같은 교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도토리 키재기일 뿐더러 동학년 회의할 때 늘 하던 얘기의 중복이기 때문에 별로 유익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내 월급을 몽땅 투자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 분야에서 몇십년을 연구한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문가 강사에게서 강의를 들으면 많은 것을 얻어온다. 이 강사가 이번 강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의 노하우를 고민했을까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지금은 배우는 학생이지만 개학이 되면 반대의 입장이 되어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교수법에 유달리 관심을 갖고 보게 된다. 학문의 깊이에 감동을 하면서도 개학하면 어떻게 가르쳐아 할까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방학 때의 배움을 나는 좋아한다. 교직계통과 관계가 멀어 당장 써먹을 수 없는 연수라 할지라도...
나 스스로에게 무한한 채찍질을 가했던 방학 중 교총연수,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2학기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