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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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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 편지> 밀애

삶이, 참을 수 없이 하찮아! 하찮아서 미칠 것 같아!


한 여자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채 사진을 찍는다. 사진사는 "뭐 오늘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가"라고 묻지만 여자는 그저 사진이 없어서 찍는다고 대답한다. 꽃무늬 빛깔의 화사한 배경을 뒤로한 채, 여자는 소리 없이 울다 웃는다. 한 남자를 사랑했고 문득 그를 떠나보냈으며 가정을 벗어나
싸구려 음식과 시간제 일자리로 생계를 연명한다는 여자. 채 물기가 마르지 않은 여자의 뺨 위로 빛이 쏟아진다. 홀로 찍는 가족사진 한 장과 함께 그녀는 혼자 시작할 것이다.

결혼이란 제도에 발이 묶인 채, 무심하게 천천히 늙어갈 일만 남은 우리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유일한 불씨, 언제나 매혹적인 위반에 대한 충동. 그것을 우리는 '불륜'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젠 너무 흔해서 새롭지도 않은 '불륜'이라는 재료로 요리한 영화.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한 변영주 감독의 '밀애' 역시 그렇게, 그저그런 메뉴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격정 멜로'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맛을 보고 나니, '불륜 영화'라기보다는 '여성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여성이 자신을 정의하고,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며, 다른 세계로 날아가려는 욕망을 담아낸, 철저한 여성영화 말입니다.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에 불쑥 들이밀어진 남편의 외도. 미흔(김윤진)은 그 날 이후 깨질 듯한 두통에 시달리며 허공만 응시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 죽어버리지 그랬어. 그럼 나도 따라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이젠 안 돼. 옛날로 돌아갈 수가 없어… 삶이 참 하찮아… 너무나 하찮아…" 라고. 남편 효경은 이제 그녀에게 '하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그전에 미흔이, 효경에게 '하찮아'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충만으로 가득 했던, 아니 그렇게 생각했던, 그녀의 세계는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비어버린 구멍사이로 '불륜'이라 불리는 사랑, 인규(이종원)라는 격랑이 파고듭니다. 도덕에 대한 강박관념, 수치심, 사람들의 추문이 그녀를 에워싸지만 이미 뜨거워진 몸은 주체할 수 없습니다.

파국(破局)이 자명하더라도 브레이크 없는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그녀는 멈춰 설 수 없습니다. 그녀가 애초에 불온했기 때문에?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구멍을 적당히 땜질하며 사는 대부분의 우리와는 달리, 그녀는 다만 그 구멍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을 뿐입니다.

새어나오는 울음을, 어금니를 통해 심장까지 이어진 울음을 삼키며, 사진을 찍던 미흔. 혹자는 그녀가 '그 특별한 날'의 대가로 서른 셋 이후의 삶을 싸구려 음식과 시간제 일자리에 저당 잡힌 것이라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의 뺨 위로 쏟아지던 빛은, 텅 비어 버렸던 미흔의 세계가,
그녀의 빈 구멍이, 빛으로 다시 채워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낯선 거리를 혼자 걷고, 낯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낯선 상점에 홀로 들를 그녀. 그녀가 혼자 울지 않기를, 두통으로 새벽 두시까지 방안을 밝히지 말기를… 그리고, 절대로 돌아보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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