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 파문으로 방송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유명인들의 위조명세서를 정리해놓고 보니 가관도 아니다. 허위학력과 실제학력 사이의 갭이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릴라성 열대야로 유난히도 더웠던 한여름 8월, 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이기도 했던 한 달은 전동국대 교수인 신정아가 몰고 온 학력위조 파문으로 온 나라가 위조화염에라도 휩싸인듯 훅훅 달아올랐다. 여기서도 학력, 저기서도 학력, 눈뜨고 나면 새로운 학력 위조건이 튀어나와 ‘설마 저 사람도’를 외쳐야만 했다. 지성인의 집결지라고 자부하는 학계부터 직격탄을 맞았고 줄줄이 문화예술계 종교계의 거목부터 끌려 들어왔다. 이런 추세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고행성사하듯 어쩔 수 없이 학력을 위조했다고 커밍아웃하는 유명인들도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만큼은 아닐 거라고 믿어왔고 또 믿고 싶었던 대다수의 나같은 부류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로마의 황제 시이저가 암살될 때 외쳤다는 ‘부르투스 너도냐?’를 목놓아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정아라는 인물이야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어느 날 느닷없이 툭 튀어나와 주목받은 인물이고, 늘 텔레비젼에 얼굴을 비추며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던 방송스타가 그랬을 때는 친한 친구에게 한 방 얻어맞은듯 뒤통수가 얼얼했다. 예전의 잘나가던 프로 ‘일요일일요일밤에의 간판코너 러브하우스’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집을 고쳐주던 인테리어디자이너의 학력위조건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는 다른 디자이너보다 매끈하게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유려한 말빨도 없어서 되려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던 인물이었다. 어수룩하고 촌티난 생김새가 진솔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방송에 너무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소박하고 겸손해 보이던 사람이 이런 엄청난 위조 군단의 핵심 인물일 줄이야.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나온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 다음은 지성미의 대명사인 것처럼 고상을 떨던 연예인들, 특히 여자 연예인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납세하여 철없을 시절의 한 때 실수였노라고 눈물까지 찍어내며 변명할 때는 십년 묵었던 국수발이 다 밀려올라올 지경이었다.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그나마 괘씸죄가 삭감되었을텐데 이네들은 한결같이 포털사이트에 기재된 것은 알았지만 컴맹이라 정정하는 방법을 몰랐다, 매니저가 한 일이다, 시기를 놓쳤다면서 변명 아닌 변명만 일삼았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스타급 공인으로 성장한 이네들은 얼굴도 예쁜데다가 명문대 출신이라고 하면 대중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진즉 허위학력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대단한 학력이 주는 프리미엄을 즐기며 영원히 땅속까지 파묻혀 가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꾸준히 외길을 걸으며 방송생활만 하면서 살았다면 그런대로 눈감아줄 수 있겠다. 아무리 대단한 학력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연기 실력이 뾰롱나면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이미지만 먹고사는 광고계의 스타든 명문대 출신의 스타든 연기력이 딸리면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써야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텃밭이 아닌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다른 업종의 거장이 되는데 위조 학력이 도움이 되었다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성인으로 변모하는 데 허위학력이 한푼어치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노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학력은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프리미엄이기에. 더욱이 그곳이 명문대라면 더 나아가 미국의 무슨 대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이라면 검증도 해보지 않고 껌뻑 죽는 우리나라니까 말이다.
학력중시의 사회가 자기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초라한 변명에 불과하다. 명문대를 나와야 사람 취급해주고 대접받는 사회라면 위조라도 해서 신분상승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똑같을 터이다. 하고 싶지만 못하는 이유는 양심이라는 것에 위배되는 탓이다. 이것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이네들은 분명 양심이라는 것에 털이난 사람이고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다. 자라나는 10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인인 이네들의 학력위조는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간에 도덕적인 잣대로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소학교 졸업이라고 쓴 정주영처럼, 고등학교 중퇴라고 기죽지 않던 대감독 임권택처럼 그렇게 자신있게 드러내놓고 살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학력위조의 유혹은 평범한 삶을 사는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쓴 책에 프로필이 들어간다던지, 아니면 문학단체에서 감투를 썼는데 프로필을 달라고 할 경우이다. 그럴 때면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를 졸업으로 쓰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이게 된다. 이유는 단 한가지 수료보다는 졸업이 폼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학점만 다 이수하면 주는 수료는 뭔가 덜떨어지고 엉성한 것 같고, 논문까지 통과한 졸업은 똑부러지고 야무진 것 같아 보인다.
수료와 졸업 똑같은 두글자인데 감히 위조를 못하는 것은 논문 한 편 쓰기위해 흘린 땀과 노력의 가치를 아는 까닭이다. 논문을 쓸 때는 놀고 싶은 유혹도 참아야 하고, 시샘 섞인 비아냥의 시선도 참아내야 하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자기와의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한다. 밤잠 못자가며 어렵게 발로 뛰며 일군 졸업이라는 명예를 잘난 얼굴빨로 화려한 말빨로 거저먹으려 한 행위는 분명히 죄악이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지식기반사회를 뒤흔드는 신뢰 인프라 교란 사범에 대해 무언의 칼날을 날려야 한다. 그것이 학생을 상대하는, 가르침을 업으로 삼는 직업을 가진 자라면 더욱 그렇다. 학력 위조자의 죄명은 사문서 위조와 업무방해죄이지만 이것보다 더 국민을 속인 자기 양심을 속인데 대한 죄과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공인, 아무나 공인이 되는게 아니다. 도덕성이 결여되어도 한참 결여된 학력위조스타보다는 조용히 한 우물만 파며 연기를 해온 장인정신의 스타가 진정한 공인으로 추앙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학력을 굳이 위조하지 않아도 실력으로 충분히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를.... 쯧쯧, 참선을 외쳐야 할 종교계까지 이 무슨 난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