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의 호들갑스런 전화다. 곰살맞기 이를 데 없는 여동생이 먼저 이렇게 수선을 떨 때는 진짜 재미있는 건이다. 그것이 엄마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는 더욱 더.
교복입고 학교 다닐 때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먼 산길로 우회해 다녔다는 울엄마. 동네사람들에게 인상 좋고 사람 좋은 복실네로 통하는 울엄마, 평생 큰소리로 싸움 한번 해본적이 없는 착한 울엄마,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라고 할만큼 다소곳하고 선 고운 울엄마, 20년을 같이 살아온 우리의 머릿속에 박힌 울엄마의 이미지이다. 그러했기에 여행가면 한인기 한다는 말을 우리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내가 좀 인기가 있긴 하지. 여행갈 때 내가 빠지면 재미없다고 자꾸 데려갈라캐서 골아프다 안카나.” “에이, 왕비병.”
한번씩 툭툭 던지던 엄마의 말이 우리는 정말 농담인줄 알았다. 그런데 단체 관광 가서 찍어온 비디오를 보고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비디오 속의 엄마는 평소에 각인되어 있던 울엄마가 아니었다. 관광버스 안에서, 여관방 안에서 판을 이끌어가며 흥을 돋우는 사람은 분명히 울엄마였다. 그 날 여동생과 나는 “울 엄마 맞아, 울 엄마 여시같이 대따 귀엽네.”하면서 배꼽을 쥐고 방바닥을 뒹굴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여동생이 보내준 동영상은 그냥 편하게 볼 수 있는 관광버스의 막춤하고는 또 달랐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엄마의 숨겨진 끼와 열정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풍물을 배우러 다닌다고 내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갔었다. 그냥 심심해서 배우러 다니는 차원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동영상에서 비친 울엄마의 위치는 분명히 상쇠였고 제대로 격식을 갖춘 위문 공연이었다.
15명으로 구성된 단원의 한가운데에 앉아서 리듬을 타며 살랑살랑 어깨짓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울엄마였다. 몸짓이 크지 않았지만 돋보인 이유는 리듬을 따라 출렁이는 어깻짓과 호흡 때문이었다. 평생을 꾼으로 삼아 온 사람처럼 자연스러웠고 꽹과리와 한 몸이 되어있었다.
엄마는 내 평이 궁금했는지 잘하더냐고 물어왔다. “울엄마, 야시뽁따리 같이 잘하네. 엄마만 돋보여.”
그러자 엄마는 좋아하면서도 어디가 잘못되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개인기로는 최고인데 엄마가 상쇠라는걸 잊으면 안돼. 상쇠는 판을 이끌어가야 되는 위치거든. 좀 오바해서 공연단의 흥을 돋우라고. 그리고 짝쇠는 하이라이트라서 가장 많은 박수를 이끌어내야되는데 서로 얼굴도 안쳐다보고 그게 뭐야.”
그러자 엄마가 억울하다는 듯 대답해왔다.
“아 그 부쇠 영감탱이가 말야, 멀뚱멀뚱한게 받아쳐줘야 말이지. 얼어가지고 까먹기나 하고, 그것도 그나마 나아진거야.” “갱갱 개갱개갱, 개개갱 개갱개갱, 개개개개 개갱개갱, 육채로 맞받아치기를 할 땐 먼저 친 뒤에 앞만 보고 있지 말고 단원들을 보면서 추임새를 넣어주란 말야. 그리고 징치는 아저씨는 왜 뒤에 숨겨놨어. 징은 사물의 꽃이라서 앞쪽에 폼나게 배치해야돼. 부쇠가 지금 역할을 못해주니까 엄마를 중심으로 징치는 아저씨는 오른쪽에 북치는 아저씨는 왼쪽에 배치해서 흥을 돋우란 말야. 그럼 판이 확 살걸.”
엄마는 내 어줍잖은 평을 진지하게 들었고, 지난 9월 13일인가 대전까지 가서 공연한 ‘실버축제한마당’에서 반영을 했다고 했다. 유명한 가수도 나오고 중앙방송국에서도 촬영온 대단히 큰 판이었는데 잘한다고 칭찬받았다며 자랑이 대단했다.
아마추어 축에도 못끼는 내가 풍물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엄마랑 함께 살 때 방학이면 풍물을 배운다고 일주일 정도 연수원에 들어간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 풍물을 접했지만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었다. 연수를 마치기 바로 전날은 배운 것을 공연하는데 강사가 날보고 부쇠를 맡으라고 하였다. 상쇠역을 맡기고 싶었지만 대학에서 풍물동아리 회장을 하는 애의 체면을 생각해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손막음이라던지 세세한 것은 동아리회장이 낫지만 호흡이나 판을 이끌어가는 것은 내가 더 낫다고 하였다. 그 때는 나의 숨어있던 끼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몰랐는데 이번에서야 엄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며 평생을 집안살림만 해오던 울엄마는 그 많은 끼를 어떻게 눌러놓고 있었을까? 육순 넘어 발굴해낸 울엄마의 특기적성을 보며 여동생과 나는 이런 농담을 했다. 엄마가 우리 어렸을 때 풍물한다고 밖으로만 나다녔으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거지새끼처럼 밥도 못얻어먹었을까, 아니면 용돈을 충분하게 받았을까?
나는 엄마가 자기개발을 하겠다며 밖으로 내돌아치지 않았길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엄마가 없는 빈자리는 장녀인 내가 메꾸면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을 테니까. 어쨌든 늦은 감은 있지만, 자식 키우느라 그 동안 묵혀두었던 풍물에 대한 끼와 열정을 마음껏 내뿜으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사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