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하는 도시, 행복한 서산이란 현수막이 보이는 건물이 바로 서산시민문화회관이랍니다.>
국화향기 그윽한 성추(盛秋)의 계절에 현동자 안견 선생을 기리는 백일장 대회가 우리 서산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답니다. 오늘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서산시민문화회관 광장에는 초등학생을 비롯, 중고등학생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약 2,000여명이 모여 안견 선생을 기리는 기념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미술진행본부에 들러 도화지를 타가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현동자 안견 선생은 충남 서산시 지곡면 출신으로 신라의 솔거, 고려의 이녕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이 분의 대표작으로는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진본은 일본의 천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 학생이 문학진행본부에 들러 400자 원고지를 타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몽유도원도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정확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하루 빨리 몽유도원도를 되찾아 안견기념관에 보관해야 할 사명이 우리 후손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꼬마 아까씨의 멋들어진 창이 대회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림 때문만이 아닙니다. 몽유도원도의 뒷면에는 안평대군의 제서(題書)와 시(詩) 한 수를 비롯해 당대의 기라성 같던 학자들인 성삼문, 신숙주, 이개, 박팽년, 서거정 등을 포함해 20여 명의 고사(高士)들이 쓴 스무 편의 친필 시문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백일장대회를 돕고 있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글씨와 시문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당시의 사회상과 정치적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일본에서도 우리의 몽유도원도를 국보급으로 취급하며 애지중지하는 것이겠죠.
<리포터가 근무하는 서령고등학교 학생들도 이번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나섰더군요.>
현재 지곡의 시립 안견기념관에 걸려있는 '몽유도원도'는 진본이 아니고 모사본입니다. 이제 일본과도 국교가 정상화되고 우리나라의 위상도 어느 정도 격상되었으므로 하루빨리 정부와 서산시가 힘을 모아 강탈당한 몽유도원도를 되찾아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임시 먹을거리 장터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안견 선생도 지하에서 편히 두 다리 뻗고 영면을 취하실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또한 안견 선생의 부끄럽지 않은 후손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협소해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백일장을 지도하다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훌쩍 지나버렸더군요.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고 아이들도 그만 가자고 조르는 통에 백일장을 접기로 했습니다.
<자녀가 쓴 작품을 어머님께서 읽어보는 장면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안견미술실기대회'는 아직도 한창이더군요. 경치 좋은 곳마다 캔버스를 펼쳐놓고 알록달록한 가을풍경을 스케치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아무 곳에나 돗자리를 펴면 바로 화실이 됩니다.>
<오후 1시가 넘자 작품들이 속속 접수되기 시작합니다.>
<그림에 몰두해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번 제1회 안견백일장에는 각종 공예품 전시회도 함께 개최되었습니다. 사진은 종이로 만든 에스키모인들의 집인 이글루의 모습입니다. >
오늘은 아이들이 가장 신나는 날이었을 겁니다.
<행사장 한 쪽에 설치된 엿판에는 먹음직스런 가락엿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