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스러운 호박의 모습이 떠오르는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 해마다 10월 31일 밤에 축제를 여는 연례행사로 서양의 어린이들이 갖가지 상징물과 가면 그리고 옷 등으로 변신해 집집마다 다니는 축제로 유명하다. === 서양의 할로윈데이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이용의 잊혀진 계절 ===
10월 31일하면 생각나는 것 청소년 :『서양의 할로윈데이』... 기쁨, 현실, 즐거움, 축제 중장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슬픔, 추억, 외로움, 낭만
똑같은 날인데도 세대에 따라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이렇게 다르다. 어쩜 이렇게 달라도 한참 다른지... 10월의 마지막날이라는 주인공을 한가운데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서서 한쪽은 울고 한쪽은 웃고 하는 그런 상황이다. 나이가 들면 서러움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그래서 할로윈데이가 아닌 잊혀진 계절부터 먼저 떠오르는 것인가?
10월 31일을 맞는 아침, 매달 맞이하는 마지막날이건만 무덤덤한 다른 달과는 달리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맞은 추위도, 바람에 하염없이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도 괜시리 의미가 부여해졌다. 간만에 느껴보는 낭만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기분도 모르고 만나자마자 할로윈타령을 해대었다.
“선생님, 오늘이 할로윈데이인데 우린 축제 안해요?” “뭔데이?” “할로윈데이요?” “그딴걸 왜해?”
그렇게 무심코 내뱉고 보니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기쁨에 들떠 선생님이 맞장구쳐주길 바라고 묻는 말인데 단절음의 노우였으니 말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 이상 내 말을 번복했다가는 아이들이 할로윈이니 뭐니 해가면서 하루종일 난리칠 것이 뻔해서 그냥 모르는척 넘어갔다. 더군다나 오늘은 정숙 또 정숙해야할 장학지도날이 아닌가? 준비하느라 마음도 급했지만 아이들을 들뜨게 만드는 것이 안좋겠다는 생각에 무시를 해버렸다.
오늘이 할로윈데이라는 징조는 며칠 전부터 있었다. 개구쟁이 몇 놈이 얼굴과 손목에 온통 핏빛 물감을 바르고 내 앞에서 얼쩡거렸다.
“선생님, 형아들에게 얻어터졌어요. 엉엉엉.” “으으윽, 손목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확연하게 가짜인 것이 표가 나는 어설픈 분장이었다.
“야야야, 물감인거 다 표난다. 할래면 제대로 해야지. 글구 너희들이 몇 살인데 아직도 얼굴에 물감을 묻히는 놀이를 하냐?” “어, 형들은 진짜 속았는데. 운동장에 엎어져 있으니까 정말 죽은줄 알더라고요. 울엄마도 진짜 속고 병원에 데려갈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아이들은 이 반 저 반 휩쓸고 다니며 무슨 큰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듯 희희낙락했다. 그때만 해도 그 행위가 할로윈데이의 전초전임을 꿈에도 몰랐다. 요즘에 유행한다는 시체놀이려니 했다. 진즉 알았으면 유치하더라도 좀 멋지게 속아줄껄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말이다.
10월 31일은 할로윈데이, 분명이 서양에서 들어온 축제이지만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즐길만한 마땅한 축제가 없어서이다. 이제 우리도 가면을 쓰고 한바탕 멋지게 놀아보는 축제일이 하루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늘 학교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에겐 일탈의 시간이 없다. 기껏해봐야 사이버공간에서 핸드폰, 게임기, 컴퓨터와 씨름하며 기계에다 스트레스를 푸는 일 뿐이다. 가상의 공간에다 화풀이를 하는 그런 서글픈 현세태보다는 직접 몸으로 가슴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청소년만의 건전한 축제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남의 나라 축제에 웬 열광이냐고 비판만 하지 말고 우리도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살린 가면축제일을 만들었으면 한다. 오랫동안 전통문화로 내려오는 지방의 고유축제를 그냥 지방의 행사로만 묵히지 말고 그 탈들을 모두 모아 가면축제로 승화시키는 그런 10월 31일면 좋겠다는 말이다. 북청사자탈, 안동하회탈, 고성오광대탈, 강릉관노탈이 모두 한 곳에 모여 한바탕 놀음을 벌이는 그런 대규모 축제가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꼬마귀신으로 분장한 개구쟁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 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테야!)”하고 외치면서 자루를 내밀면, 그 자루에다 한줌의 과자, 사과, 오렌지 혹은 사탕 등을 넣어준다고 할로윈데이!
도깨비분장을 한 개구쟁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떡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하고 외치면서 돌아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심청전, 놀부전, 별주부전, 콩쥐팥쥐전, 장화홍련전, 춘향전 등등 전래동화나 민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면 얼마나 신바람날 것인가?
외국의 축제처럼 무섭고 으스스한 엽기적인 가면이 아닌 해학적이고 친근한 우리 고유의 탈을 쓰고 하하호호 웃는 그런 10월의 마지막 가면축제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