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가장 고플 셋째시간에 피자를 든 배달부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여기 피자 주문시킨데 맞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부터 질렀다. “이야, 피자다!” “우째 이런 행운이” “이거 정말 선생님이 사시는 거예요.” 내 지갑에서 현금이 지출되는 것을 본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래, 선생님이 상을 탄 기념으로 내는 거야.” “우와, 선생님 사랑해요.” “요럴 때만 선생님 사랑하냐? 너희들 피자를 사랑하는 거냐 선생님을 사랑하는거냐?” “둘 다요.” 빈 말이라도 기분이 좋았다. 가르치고 배우는 밋밋하기 짝이 없는 학교의 일상에 느닷없이 피자가 등장하자 아이들은 상당히 즐거워했다. 옆반이 못보게 문을 꽁꽁 닫으라는둥 아님 지들도 예전에 자랑하며 먹었으니 우리도 뽐내며 먹게 문을 열라는 둥 뭐가 그리 즐거운지 희희낙락이었다. 아이들은 예고도 없이 날아든 피자파티가 즐거운 듯 했지만 양으로 보았을 땐 덩치가 큰 남학생들에겐 조금 모자란듯 싶었다. 피자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도 시켜먹어 본 적이 없어서 피자집에서 하라는 데로 주문한 것뿐인데 양이 적어보여 마음이 좀 그랬다. 한창 먹어야 할 때는 그래도 간에 기별이 갈 정도는 먹어주어야 하는 것을... 그래도 아이들은 선생님이 한턱 낸데 대해 기분이 업된 모양인지 방학할 때 한 번 더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흔쾌히 사주겠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약속을 한 겨울방학식날이 되었다. 또 다시 갓구운 뜨끈뜨끈한 피자가 등장하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마 선생님이 지난 주에 이어 연거푸 피자를 사주겠냐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지난 번 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피자가 나오자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너희들은 피자를 사랑하냐? 선생님을 사랑하냐?” 다 알면서도 지난번과 똑같은 농담을 던졌다. 일년 동안 많이 모자랐던 선생님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더 잘 알기에 이렇게 피자로나마 보답하려는 속마음을 알까? 어떨 때는 내 속이 무진장 타도록 개구쟁이 짓을 하고, 또 어떨 때는 천사표가 되어 내 맘을 위로해주는 6학년 사춘기 녀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못난 선생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도 예비중학생이라고 아이들은 선생님 주머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늘 심사 보러 가니까 피자값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고 했더니 금방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그럼 졸업식날 한 번 더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 때는 피자 말고 짜장면 사주세요.” “졸업식날은 가족끼리 더 좋은 음식집에 가서 축하받느라 선생님이 산 짜장면은 뒷전일껄?” “그럼 졸업식 전날 사주세요.” “학교 급식이 어떡하구, 급식은 버리냐?” “그래도 짜장면 먹으면 재미있을텐데...” 아이들은 우리반 모두 함께 모여 짜장면을 먹는 장면만 생각해도 신이 나는지 짜장면 타령을 해대었다. 정말이지 시골학교에 있을 때는 반 전체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도 하고, 남아서 짜장면도 사먹이고 신바람날 일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일들을 많이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시골이나 도시나 아이들의 마음은 다 똑같을텐데... 졸업시키고 나서 우리반 아이들 짜장면 한 번 거하게 사주어야겠다. 얘들아, 짜장면데이날 모여서 우리 짜장면 실컷 먹자. 학교에서 짜장면 주문해 놓고 기다릴게. 너희들이 중학교 생활 잘하는지 살펴볼겸... 어이 예비중학생들, 짜장면데이날 짜장면 먹으러 꼭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