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날이라 일찌감치 아이들을 하교시킨 뒤였고, 교사들도 자율퇴근이라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갑자기 예기치 못한 사안이 생겨 그 건을 처리해놓고 가느라 점심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택시정류장 앞에 간단하게 허기를 면케 해줄 포장마차의 군것질거리가 있었지만 먹고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행여나 나 하나 때문에 열네명이나 되는 심사위원을 기다리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탓이었다. 다행히 길은 막히지 않아 약속시간 5분 전에 심사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꼴찌는 아니었지만 꼴찌나 다름 없는 도착이었다.
심사위원진은 동화 작가로 명성이 자자한 분들, 그리고 현장에서 동화구연 지도자로 활약하시는 분들, 대학에서 그 분야의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런 대단한 분들 속에 변변찮은 내가 끼었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도 했다.
바로 심사 기준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고, 한반에 세 명의 심사위원이 배정되어 다섯 개의 시험장으로 향했다. 빈강의실은 동화구연지도사 자격심사를 보러온 후보자들의 맹연습장이었다. 벽을 보고 연습하는 사람, 교탁 앞에서 실전처럼 리허설을 하는 사람, 원고를 보고 외우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초조해하는 모습이 내게로 전이되어 나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심사장인 강의실은 정말이지 썰렁했다. 칠판에는 주최측의 로고가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후보자가 설 자리가 그려져 있었으며, 그 정면에는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카메라는 동점자가 나왔을 때나 당락의 여부를 다시 재고할 때에 필요한 장치였다. 동화구연하는 후보자들을 찍는 카메라인데도 괜시리 신경이 쓰였다.
심사위원의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를 한잔 마실 틈도 없이 바로 1번 후보자가 들어왔다. 첫 후보자라 긴장했는지 얼굴표정이 많이 굳어있었다. 그래서 웃는 상황의 구연을 하는데도 우는 표정이 되어 보는 내가 어색할 정도였다. 말의 속도도 빨라지고 톤도 높아져서 편안하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만일 저 자리에 있었다면 저렇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애처롭고 안스러운 후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에 들어선 후보자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연극배우를 해도 될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데다가 실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이 아가씨는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심사위원이 마치 아이들인 것처럼 설정하고 동화구연을 했다. 자신만만함에서 나오는 검증된 실력이었다. 나는 아예 펜을 놓고 그녀의 동화구연에 빠져들었다. 펜은 심사 기준의 항목에서 못미칠때 체크하는 방식이라서 굳이 펜을 놀릴 필요가 없었다. 100점의 점수를 줘도 될만큼 완벽한 동화구연이었다. 얼굴도 예쁜데다가 실력도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말은 이럴때 쓰이라고 있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도 이색적이어서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후보자들도 있었다. 화장기 없는 생얼의 60세가 넘는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 분이 들어왔을때는 나이가 많음에 한번 놀랐고, 몇차례 떨어지고 또 다시 도전하는 열혈 지망생이라는데에 두 번 놀랐고,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너무도 감칠맛나게 동화구연을 잘해서 세 번 놀랬다. 자신의 약점인 강릉사투리를 완전히 고친 그 열정에 박수라도 크게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 50번이 끝날 때까지 남자후보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는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동화구연은 왜 꼭 여자만 해야하는지에 의문이 갔다. 누군가 용감한 선구자에 의해 동화구연가도 금남의 벽이 깨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3시간 20분 동안, 장장 200분 동안, 꼼짝도 못하고 심사를 하고 나니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그것도 평소에는 입지 않는 정장 차림으로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다리에 쥐가 나고 온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후보자 개인에게는 당락의 운명이 걸린 것이라 쉽게 몸과 마음을 흐트러트릴 수는 없었다.
고된 심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흐뭇했다. 생얼로 자신만만하게 동화구연지도사 자격심사에 응했던 할머니를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환갑이 넘은 할머니의 도전정신에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질리우스의 잠언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