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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학교에 얼굴내보이기 타령은 이제 그만...


“선생님 방학 하셨지요? 원고 기다리다가 눈빠집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독서록 문제 다 내주시는 것 알고 계시죠?”
“이 해가 가기 전까지는 아이들 권장도서 마무리 해주셔야 해요.”
빚쟁이처럼 여기저기서 독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은 일이라 보수가 없는 일임에도 선뜻 해주마고 약속했지만 도저히 학기 중에는 짬이 나지 않아 방학으로 밀쳐놓았던 일이었다. 그래서 방학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일주일 정도 바짝 매달리면 충분히 해낼 분량이었기에.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방학하자마자 크리스마스 뒷날부터 연속 사흘을 직원연수로 잡아놓은 탓이었다. 그나마 연수지가 서울이라면 퇴근 후의 반쪽자리 시간이라도 소유할 수 있었을텐데, 집과는 거리가 먼 충남 대천의 합숙연수라 아예 개인 일은 포기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마음이 많이 답답했다.

방학을 하면 우선 첫째날은 아무 일도 안하고 푹 쉬고, 그 다음날부터는 내 개인적으로 밀린 원고 빚 독촉부터 갚아주고,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난 다음에야 정말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를 해볼려고 맘먹었었는데 연수라는 통고를 받고 보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왔다.

기분에 살고 죽는다는데 왜 하필이면 방학한 바로 뒷날이란 말인가?
하고많은 날 놔두고 왜 모임도 많고 마무리해야할 일이 잔뜩 밀려있는 연말 시즌이란 말인가?
늘 당하는 일이지만, 방학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건만은 되물리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겨울방학 기간 36일 중에
교사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쉬는 빨간색의 일요일 7일
직원연수 3일
일직 2일
근무조 4일
6학년 졸업여행 4일
그리고 학년말 통지표 및 각종 업무 건 등등으로 학교에 들락날락 하다 보면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소유할 수 있는 날은 며칠 안 된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교사들처럼 편한 직종이 어디 있냐교, 방학 중이라도 학교에 나가 일하는건 당연하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건 사정이 다르다.
아이들이 없는 교실은 그야말로 페허와 다름없다.

먼지만 켜켜이 쌓인 교실에 쭈그리고 앉아 난방기가 들어올리는 매캐한 먼지를 들이마시던지, 그게 싫으면 난방기 끄고 추위와 사투를 벌이든지, 그것도 싫으면 교무실에 가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든지 해야 한다. 교무실은 쾌적하지만 교사가 일을 할 환경 조성이 되어있지 않아서 접대용 맨트만 남발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잡히지 않아 하릴없이 교실로 교무실로 왔다갔다 하다가 시시껄렁하게 하루를 보내다 오는 게 방학 중 근무의 실태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교사들의 방학이 이렇게 매칼없이 흘러갈 때는 정말이지 분통터진다.
요즘은 옛날과 달라 좋은 연수기관도 많고, 연수의 종목도 다양해 교사들이 맘만 먹으면 방학 내내 연수받을 꺼리가 널려있다.

연수현장에 직접 가보면 정말이지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이고,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배우러 온 연수이기에 진지함은 기본이다. 하루 웬종일 꼼짝마랏해도 즐겁게 눈빛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는다. 그러면 윈윈이라고 옆사람도 덩달아 열혈 연수생으로 변한다. 그렇게 뼈빠지게 공부하고 나면 자그마하던 내 자신이 많이 커진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자가 연수 다시 말해 교외연수의 장점이다.

하지만 교내에서 하는 직원연수는 생각의 크기도 지식의 폭도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모이는 형편이라 결론은 뻔하고 매냥 똑같은 소리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를 수십채나 짓고도 남을 정도의 장황한 말이 오가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허당일 때가 많다. 겉보기야 일거리를 싸들고 지방까지 내려가 사흘동안 합숙을 받는 일이 폼나보이고 대외홍보하기에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속빈강정이다.

좀 더 시간을 주고 방학동안 자기연찬을 하게 내버려두었다가 연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생각이 크기가 커지고 시야가 넓어지면 지금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인 내용으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발 방학만이라도 교사들이 자기가 배우고 싶은 분야의 연수를 기분좋게 배울수 있도록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서 하는 단체연수 타령은 고만 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학교에 붙잡아두지 못해 안달하는 구태의연함은 이제 고만 했으면 좋겠다.

학교에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고 눈 앞에서 알짱거리지 않는다고 도대체가 뭐하고 있는 거냐고 뒷담화나 하지 말고...
좀 더 시간을 합리적이고 알차게 쓸 수 있도록 교사들의 개성을 존중하여 자기연찬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 얼굴내보이기 타령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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