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한핏줄 한겨레로 반 만 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켜온 문화민족이다. 우리만이 쓰는 말과 우리만이 쓰는 독창적인 한글이 있는 우수한 민족이다.’면서 민족의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민족 말살정책으로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일제의 만행에 어린 가슴에도 분노가 일었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동화 ‘마지막 수업’은 일제시대의 우리의 처지와 매우 흡사했기에 지금도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다. 나라는 망했어도, 독일어만을 쓰라고 강요하더라도, 프랑스말을 잊지 않는다면 감옥에 갇혀 있어도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던 소설 속의 아멜 선생님 말이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중국말을, 일제시대에는 일본말을, 해방이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시대에는 미국말(영어)을 잘 했던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국력이 약했던 우리들에게는 큰 권력을 휘두르는 외국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의지를 알아내어 적절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의사소통의 중간 역할을 잘 해주는 사람이야말로 국가적으로 절대 필요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입지는 탄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로벌시대에 외국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개인의 발전은 물론 국가발전에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전 국민 모두가 미국인이나 영국인처럼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게 어디 간단한 문제인가. 혹시 우리말과 우리글을 교육하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못하게 한다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혹자들은 진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몰라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면 가능할 것이다.’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요즘처럼 영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교육의 최정상에 우뚝 서 있는 영어, 영어만 잘하면 만사가 오케이라는 생각들, 영어를 잘해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입시제도, 영어로 타 교과 수업을 하겠다는 등등의 설왕설래와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서 잘 살면 된다는 물질만능 사고가 국민들의 절대 가치가 돼 버린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것 아닐까?
영어를 정말 완벽에 가깝게 구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의사소통에서 사소한 해석의 오류 때문에 엄청나게 큰 괴리가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 국익을 도모하는 외교관, 외국과의 경제교류를 위한 무역업자, 금융업자, 회사관계자, 관광업자 등은 영어에 달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기본적인 생활영어 구사능력만 있어도 된다. 외국인들을 만났을 때 손짓 표정 서툰 낱말 몇 개만 써도 필요한 의사소통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잘하면 좋지만…….
초등학교에서 정식으로 영어교과가 도입될 때 많은 사람들은 사교육의 확산과 사교육비의 증가를 염려했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자녀가 영어 학력이 뒤지지 않도록 유아시절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아직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언어생활이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온갖 노력과 교육비를 지출한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해외 어학연수를 시키고 있다. 앞으로 영어교육을 확대 실시한다고 한다고 하니 그 역작용이 심히 우려스러울 뿐이다. 잘 알아듣는 우리말로 수업을 해도 그 학습 성취 정도가 만족스럽지 못한데 영어로 수업을 한다면 과연 어떨까!
근래에는 대학 입학, 회사 취업,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보직 등 영어 구사 능력이 우수하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영어 능력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선발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제시하고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예 응시조차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익이나 토플 등의 고득점을 쟁취하기 위한 교육비는 말할 것도 없고 전형료로 유출되는 경제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전 국민을 영어에 달통하게 만들려말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집중으로 교육시켜 국가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게 하자. 영어 구사 능력이 절체절명인 것처럼 사활을 걸어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아야겠다. 영어의 환상에서 깨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