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에 있는 임해수련원에서 2박 3일의 직원연수를 한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겨울바다와 탁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려니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럴 틈새 여유도 나지 않아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결국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싱싱한 회맛보다 더 깊은 겨울바다맛을 못본 이 아쉬움이라니...
이렇게 할거라면 왜 굳이 이 먼 곳까지 차를 대절해가면서 돈 낭비 시간 낭비를 했을까 싶다. 대천까지 가는데 한나절 서울로 돌아오는데 한나절 정작 해봐야 중간에 끼어있는 하루가 제대로된 연수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연수가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 바닷가까지 택해서 와야만 했을까 싶다. 서울 근처의 수련원에서 했다면 1박 2일만 해도 충분했을 것이고, 고작 열댓명인 우리 식구를 받아줄 저렴한 세미나 장소가 쌔고 쌨을텐데...
어쨌든 늦은 연수를 끝내고 피곤함을 뉘이고 있을 때 교장 숙소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의 모임은 주로 오늘 하루의 평가나 내일 일정을 예고하는 짤막한 공지 뒤에, 간단한 안주를 벗삼아 캔맥주를 마시며 아주 가벼운 대화가 오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모임의 주제는 딱 하나 교회에 관한 얘기로 집결되었다.
교장은 어느 교회 집사고 교감은 어떤 교회 장로고 아무개 교사는 어느 교회를 다니고 또 누구는 무슨 교회를 다니고 하다 보니 완전 기독교인들의 모임 잔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다보니 기분이 업된 교감은 저 쪽은 성당을 다니니까 기독교나 다름없고 저 쪽 한두사람만 빼놓고는 다 기독교네 하면서 한술 더 떴다. 뭐가 그렇게 칭찬할게 많은지 서로 서로 띄워주느라 기독교 모임집회라도 온것처럼 그네들끼리는 너무도 유쾌상쾌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교장은 그 분위기에 고무 되었는지 비윗장 좋기로 유명한 교사를 이번 해에는 꼭 교회로 데리고 갈 거라고 했고, 그 교사는 안그래도 교회에 다닐려고 했다고 굽신거렸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신교(자신을 믿는 종교)라고 큰소리 친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보기에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타종교의 독실한 신자인 신참까지도 예전에 대학다닐 때 성가대 대원이었다며 교회에 근접한 말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입맛이 썼다.
기독교인들에겐 너무도 화기애애한 자리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외의 사람에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모르는 아주 부담스런 자리가 되어버렸다. 비기독교인 젊은 교사는 “분위기가 왜 이래” 궁시렁거리면서 애꿎은 맥주잔만 들이켰다.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교사들은 교회 쪽의 화제라서 당연히 몰라서 못끼는 건데 자기네들끼리 실컷 웃고 떠들다가 느닷없이 비기독교인 쪽으로 화제를 돌려 왜 한마디 말도 안하고 있느냐고 할 때는 정말 뜨악 그 자체였다. 기독교 모임 단체에 이질적인 자들이 끼어들었을 때의 그런 분위기가 확 몸에 와닿는 까닭이었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인이 우두머리 직책을 맡았을 때 어김없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럴 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동참해야할지 아니면 보고만 있어야 할지 모르는 어정쩡한 상황이 되어 그런 자리가 많이 부담스럽다. 이상하게도 타종교인들은 어떤 종교를 믿는지 알 수가 없게 행동하는데 유독 기독교인들은 꼭 티를 내면서 기분 좋게 회식하는 자리에서도, 노래 한 자락 부르는 자리에서도 하느님을 부르고 아멘을 외친다.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상사라는 직함을 이용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화제로 분위기를 몰고 가서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세를 과시하는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자라면 내 신앙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신앙과 종교도 소중하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종교가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대종교든 민속신앙이든 무교든간에...
한 때 서울봉헌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기독교장로인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년학생연합기도회의 자리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이 아니라 서울기독청년회를 바친다고 했어야 옳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개인의 위치가 아니라 이천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우두머리였고,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그 자리의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되는 신분이었다. 연예인들이 조그마한 일에도 뭇화살을 맞는 것도 다 공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 17대 대통령도 되었으니 종교의 자유가 있는 집단의 지도자로서 타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과잉 발언 때문에 어떤 상처를 받을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런 혜안의 지도자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기독교도 교세의 확장, 성장제일주의만이 최고의 덕목이 아닌 포용하고 끌어안는 성숙한 교회로 거듭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래없는 사이비 성황과 지나친 전도 방법으로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게 비웃음 거리나 되지 말고...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부탁하노니 제발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는 구분해서 지나친 전도와 세과시는 하지 않길 바란다. 한 나라의 대표자나 직장의 관리자가 다 교인이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야 사랑받고 인정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편협된 행동은 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맘 약한 국민이나 일개 직원들은 우두머리의 방귀소리에도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