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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국보1호인 숭례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예를 숭상하는 숭례문
한양도성 정문으로 남대문이라 부르지요
동서로 흥인지문과 동의문에다가
북쪽에 있는 숙정문과 함께 4대문이였지요
아, 그런데 이를 어째요. 숭례문이 불탔어요.
소중한 문화재를 슬프게도 잃었어요. 잃었어요.

일본나라 국보 1호는 목조미륵반가사유상
그 재료는 적송으로 우리나라의 나무지요
우리의 금동미륵반가상과 꼭 닮은
삼국시대의 문화전파에 마음 뿌듯하지요
아, 일본은 잘도 지켜요. 미륵반가사유상.
모두 생명처럼 소중하게 받든대요. 받든대요.

== 정명숙의 노랫말 ‘국보 1호를 잃었어요’ ==


즐거운 설연휴의 마침표를 찍는 날.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오후 9시경.

긴연휴의 후유증으로 다가올 월요병을 걱정하며 머리나 식히자 싶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던 시간에 난데없는 속보가 뜨더니 불길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정규방송이 속보에 먹히는 것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미칠듯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휩싸인 건축물이 남대문이라는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멀거니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저걸 어째 저걸 어째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620년 수령의 거목이 한순간에 쿵하고 넘어가는데도 손쓸 길이 없다는 사실이 그저 암담할 뿐이었다.

그토록 악랄했던 일제치하의 암흑기에도, 수도 서울을 빼앗겼다 수복했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6․25전쟁 때에도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켜오던 남대문이 아니었던가? 차라리 천재지변이라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체념했을 터이지만 방화에 의한 문화재 소실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지극히 평화로운 시기에 전소되었다는게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나라의 보물 중에서 최고라고 일컫던 숭례문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이유로 사라져도 좋은 것인가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평범한 칠순 노인이 세상에 품은 원망을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던져 넣을 정도록 만만하게 관리했다는 사실에 더욱 더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불태워 보낼려고 빛좋은 개살구격인 개방이라는 것을 했단 말인가?
굳게 닫혔던 숭례문이 개방된 것은 2006년 3월 3일의 일이었다.
전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당선자는 누각에 올라 사진까지 찍으며 “이제 남대문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게 되어 기쁘다”며 100년만의 개방을 무척 자랑스러워했었다.
그 기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 자서전이나 다름없는 책 “온몸으로 부딪쳐라”의 38쪽에 이런 글귀까지 써넣기도 했다.

숭례문 개방과 광화문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보행 네트워크를 조성한 것은 시민들의 욕구에 적극 부응한 일이었다. 시장 입장에서도 그것은 미루고 피할 일이 아니었다. 서울시장에겐 시민들이야말로 제1의 고객인 셈이다. 고객들의 요구가 있다면 어떠한 장애도 넘어서야 한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개방이라는 치적의 성적표만 생각하고 그 뒤에 생길 만일의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고객이라고 다 양질의 고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분노를 잠재울길 없어서 무슨 짓을 할줄 모르는 고객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열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 못막는다는 속담을 너무도 간과한 탓이다. 열사람은 커녕 한사람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았으니 원...

국보1호인 숭례문을 화재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게 누구의 죄인가?
반대를 무릅쓰고 100년만에 개방을 이루어낸 전 서울시장인가?
이번 화재로 책임을 지고 사직한 문화재청장인가?
실제 관리를 맡고 있는 중구청 직원인가, 그 우두머리인 중구청장인가?
보안관리를 맡았던 무인 경비업체인 KT텔레캅인가?
홧증을 하필이면 숭례문에다 퍼분 칠순 노인네란 말인가?
그도 아님 국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함께 맞장구치고 홍홍거린 우리 국민이란 말인가?

이제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서 어쩌잔 말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것을...
화재로 귀중한 문화재를 잃어본 적이 있던 일본은 외부사람들이 일체 국보와 보물 안에 들어갈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84년 전부터 고건축물소방관리규칙을 제정해 자금성의 경우는 아예 소방중대가 상주하면서 1분내에 출동할 수 있는 24시간 감시체재의 적극적인 방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보다 나은 선진국의 문화재관리 실태를 분석한뒤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은 후에 신중하게 개방했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재임했을 때에 뭔가 했다는 치적만 내세우기 위해 빨리빨리 개방했던 그런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 이런 결과를 불러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서울성곽의 남쪽 정문이자 서울의 목조건물중 가장 오래된 숭례문!
620살의 고령에도 위풍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숭례문이 단 2년만의 개방으로 꼴랑 5시간만의 화재로 사라져갔다.

1938년에 태어나 2008년 정초에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죽어간 숭례문에 조의를 표한다.
뜨거운 화염에 뒤덮여 잿더미로 사라질 5시간 동안 숭례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숭례문에 입이 달렸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 같다.

“국보 1호라면서 왜 대통령의 발톱만큼도 예우를 해주지 않았니? 대통령이 한번 뜨면 수많은 경호원들이 따라붙는데 난 왜 2년동안 한번도 제대로 지켜주지 않았니?”

“목재로 만든 몸이라 불을 제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어느 건물에나 있는 소화전 하나 제대로 비치해주지 않았니? 소화기 딸랑 8대가 전부였잖아.”

“종묘는 밤에도 경비원이 있어서 24시간 순찰을 돈다는데 내 곁엔 아무도 없어 참으로 무서웠어. 그래도 가끔 노숙자들이 밤을 함께 지켜줄 때도 있어서 위안이 되었지. 날 내팽개쳐둔 너희들보다 백배 더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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