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이들과 만난 지 5일째 입니다. 키 크고 활달한 김인재, 이름처럼 영리하고 눈치 빠른 김현민, 차분하고 예의 바른 서준희, 누구한테나 무슨 일에나 안테나를 세우고 사는 탁은지, 언니처럼 의젓한 최은비까지 모두 다섯 명입니다. 창 밖으로 월출산이 턱 버티고 서서 오늘도 저 바위들처럼 진중하게 그 자리를 잘 지키는 선생이 되라고 큰바위 얼굴을 하고서는 나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서 걸레를 들고 먼지를 닦아내며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다듬느라 바쁜 3월입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면 단위 학교입니다. 학생 수가 적어서 아이들은 모두 일대 일 개별학습으로 철저한 학습지도가 이루어져서 기본학습 능력이 매우 우수합니다. 아쉬운 점은 단체 경기나 게임을 하기 어렵고 친교의 범위가 좁다는 점입니다.
전교생 42명의 작은 학교이지만 깨끗하고 아담한 교정과 잘 웃고 인사도 잘 하는 아이들이 참 예쁘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2학년이지만 일기 쓰기도 매우 잘 해옵니다. 1학년 때부터 철저한 받아쓰기와 독서 지도가 잘 되어서 받침 글자도 잘 틀리지 않고 글을 잘 씁니다. 특히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어서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서도 특기 신장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어려움이라면 단급학급이라 선생님들이 맡아야 하는 분장사무가 많다보니 공문에 시달린다는 점입니다. 당장 새 정부의 <영어공교육>에 관한 공문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기존 업무의 폴더가 추가되었습니다. 다행히 학교장의 교육 의지가 확고하셔서 행사 위주나 실적 위주보다 학생들에게 최대한 이득이 되는 사업이 아니라면 과감히 축소하고 교실 수업 내실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어서 안심이 됩니다.
기한내 보고 공문은 정규 수업 시간 후로 모두 미루고 아이들과 만나는 교실을 가장 소중히 하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손수 기획서를 만들고 업무를 추진하는 관리자 덕분에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답니다. 새 학년이 되면 아이들도 새 선생님과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등교거부증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은 어른인 선생님도 결코 예외가 아니랍니다. 새 학교의 풍토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교실에서 사용하는 기기에 이르기까지 낯설음에서 오는 부담감과 새로 배정 받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든 선생님들입니다. 이전 학교보다 감당해야 할 업무가 더 많아졌지만 서로 돕는 열린 학교 분위기 아래에서 잘 해내리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자식을 버리고 나간 어미처럼 두고 온 제자들 얼굴이 그립게 다가섭니다. 지난 해 가르쳤던 1학년 21명의 아이들이 지금쯤 새 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 아이들도 자기들이 자라는 모습을 봐주지 못하고 떠난 나를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기를 바라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있을 때 잘해' 라는 어느 가요 제목처럼 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희망을 이야기하고 행복을 선사해야 하는 선생의 자리를 감사하며 다시 오는 새 봄처럼 고운 꽃을 피울 희망으로 설렙니다. 그래도 3일 동안 일기장이 없다며 핑계를 대고 숙제를 안 해 오고 크레파스도 스케치북도 없다며 떼를 쓰던 아이에게 학용품을 사주며 진심으로 격려했더니 누구보다 그림을 잘 그려서 내고 가는 아이를 보며 오늘은 나도 쓸거리가 생겼습니다. 할머니와 사는 아이에게 이제부터 엄마 노릇을 하며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지켜 보며 아이랑 함께 행복하렵니다. 엄마 마음으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