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우리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글로 손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영어 선생님께서 소개한 사연입니다. 어디를 가나 봄꽃향기로 가득하고, 어디를 둘러보나 감동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계절에 사람냄새 물씬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니 봄 흥취가 더욱 진하게 밀려오네요.
17시 정각. 교사이기 전에 한 직업인으로서 퇴근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이 또 있을까? 하기야 나는 점심 시간도 무척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하루 일과 중 2교시만 끝나고 나면 배에서 쪼르륵, 쪼르륵 소리가 나서 3, 4 교시는 수업하기가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교직원 모임이 시내에서 있던 터라 허둥지둥 책상을 정리하고 막 내 차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2008학년도 새학기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3월을 힘차게 출발하라는 의미에서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히 마련한 자리라 빠질 수도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막 내 차문을 여는 순간 저 멀리에서 연세가 많으신 듯한 할머니 한 분이 머리에 무슨 박스 하나를 이고 교무실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할머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다소 사무적인 인사말로 그 할머님께 먼저 말을 건넸다.
“아, 예 우리 손자 보러왔는데 2학년 9반 교실이 어디인가요?”
“2학년 9반요? 제가 바로 2학년 9반 담임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순간 나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님이 떠올랐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내가 대구에서 자취 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늘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할머니께선 상주 시골에서 대구까지 손수 오셔서 먹을 것을 준비해주시곤 하셨다. 손자가 당신이 손수 지은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시던 우리 할머니.
제가 2학년 9반 담임이라는 말에 할머님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우리 손자 좀 보러왔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머리에 이고 있던 박스를 내려놓으시며
“이거 별거 아니지만 이 늙은이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우리 손자 반 아이들한테 나눠주세요.”
그것은 다름 아닌 갓 돋은 해쑥으로 만든 쑥떡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사는 딸네집에 들리러 오시는 김에 이 쑥떡을 해 오셨다고 했다. 정말로 고마운 마음을 할머니께 전하고 모임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쑥떡을 내 차에 싣고 일단 모임에 참석한 후, 학교에 다시 들러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쑥떡을 고루 나눠주었다.
영화 ‘집으로’에서 치킨을 먹고 싶어하는 손자의 마음을 달래려고 할머님께서는 모든 정성을 다해 맛있는 백숙으로 상을 차린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그러면서 햄버거나 피자보다 더 맛있게 쑥떡을 먹는 우리반 아이들이 더더욱 고맙고 대견스럽게 생각되었다.
그 다음날, 할머님께서 그 먼 안면도까지 잘 가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다시 한번 더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드렸다. 마침 그 학생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전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드렸더니 그 어머니께서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며느리에게도 알리지 않고 할머니 혼자서 사랑하는 손자생각에 불쑥 쑥떡을 해 오신 것이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어머님께서는 당신의 시어머님께서 그렇게까지 손자를 생각하시는지 몰랐다며 울먹이셨다. 할머님을 바꿔 달래서 다시 한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니 무슨 그런 일로 전화까지 하셨느냐며 오히려 할머니께서 더 미안해 하셨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아주 공손하게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따뜻한 미소를 건네던 그 학생 뒤에는 바로 이처럼 자애로운 쑥떡 할머님이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