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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의 학부모, 끝나지 않은 인연

"여보! 곽성복씨 합격했네!"
대리점 대표 연수마저 포기하고 곽성복씨를 태우고 해남으로 출장을 다녀온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 목소리는 흥분하다 못해 떨리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잘 했네요.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전화가 끊긴 뒤로도 한참 동안 나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겨울 찬바람을 이겨낸 민들레처럼,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하늘을 향해 두 손 벌린 그의 도전 인생에 하늘도 무심치 않았음에 나도 모르게 감사의 기도가 나왔던 지난 금요일.

전임지였던 마량초등학교 8남매 어머니인 곽성복씨. 그는 금년 2월 25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병마에게 남편 김일남씨를 잃었다. 나는 그의 막내인 미심이를 1학년 때 담임하면서 가정형편을 알게 되어 지역신문과 인터넷 신문에 알리면서 방송 매체까지 연결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기사를 쓴 바 있다. 나의 졸필이 메마른 땅을 적시는 작은 샘물이 되어 세상의 누군가에게 희망의 등불을 켤 수 있다면, 그 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자판 앞에 앉았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가 국가의 보조금과 비정규직으로 벌어들이는 약간의 소득만으로 남편의 병간호와 8남매를 건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이 병마에 시달리는 동안 강진군과 지역민, 타지역에서도 온정을 보태어주며 위로해주었다. 남편과 나는 그 가족이 지속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을 설득하여 보험설계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안정된 일자리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설계사 시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희미한 희망조차 없는 남편을 병간호하랴, 자식들 뒷바라지 하면서 공부를 하며 머릿 속에 새로운 지식을 쌓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였다.

하늘을 향해 마음껏 울며 슬픔을 토해낼 겨를도 없이 우리는 다시 그를 불러내어 공부를 시켰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간절한 모성애와 주위의 격려를 받으며 여서 번째 시험을 보러가던 4월 11일 아침, 나는 남편의 차안에서 만난 곽성복씨의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희망을 보았다.

"미심 엄마, 장한 어머니로 우뚝 서서 8남매의 희망으로, 인간승리자의 모습을 보여 주시라 믿습니다. 틀림 없이 합격하실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우리 하이 파이브 할까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도 열심히 살아서 우리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서 도와주신 분들께 보답하며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곽성복씨가 흘린 눈물과 설움의 깊이를 나의 짧은 필력으로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깝다. 새벽에 일어나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버스를 타고 강진읍으로 다니며 설계사 공부를 하면서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에게 주어진 운명의 지팡이를 한 순간도 놓지 않고 그처럼 굳건히 잡고 일어선 그의 의지에 감동할 따름이다.

이 세상에 신이 계신다면, 하느님이 계신다면 부처님이 돌보신다면 , 대자연에 숨겨진 `선`의 이름으로 그는 칭찬받아 마땅한 이땅의 어머니이며 의지의 사람임에 분명하다. 나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세상에 선의지는 살아 있으며 신의 존재도 분명하기에 그처럼 가혹한 운명의 시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서 전문 서적을 읽고 외우며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마중물을 남겨 두신 거라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곽성복씨는 영리한 사람이다. 영리한 그가 시험에서 간발의 차로 떨어질 때마다 남편도 많이 힘들어했다. 그러나 그의 힘든 삶의 여정에 뇌세포마저 잠식 당하여 혼란스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위로했었다.

이제 그는 해냈다. 연둣빛 새 순을 내며 봄을 노래하는 저 나무들처럼 새롭게 싹을 틔우고 있다. 그의 발길 위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남편이 그의 합격을 기뻐하며 추운 들판에서 몇 시간씩 쑥을 캐서 떡을 해가는 마음을 나는 잘 안다. 값싼 동정이 아닌 , 진정으로 멋지고 당당한 설계사가 되어 8남매를 잘 키우는 장한 어머니임을 온 세상에 보여주기를 비는 마음이란 것을!

상처를 품은 진주조개처럼 2008년 봄, 곽성복씨의 가슴팍에는 사랑하는 남편을 보낸 상처의 자리에 희망의 흑진주 알이 소생하였다. 우리 모두 곽성복씨가 키워갈 흑진주를 위해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며 격려해 주자. 한 아이도 키우기 힘든 세상에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못 입고 못 먹어도 교육시키며 웃음으로 키우는 그의 가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주자. 미심이 엄마, 곽성복씨와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연으로 소중히 가꾸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그의 눈물겨운 도전 인생을 기록해 줄 것을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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