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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당신은 참 정성스럽게 아침 식사를 하네요."
"내가 건강해야 당신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지."
"당신, 지금 한 말 진심이요?"
"그럼 내가 언제 허튼 말 하는 것 보았소?"

참으로 오랜만에 남편에게 들어보는 정에 넘치는 말에 감동한 순간이었습니다. 입에 붙은 말이라고는 도무지 내놓을 줄 모르는 사람이 표현하는 말이라서 어찌나 고맙고 즐겁던지 오늘 아침 입맛은 어느 날보다 좋았습니다. 여자는 귀가 약해서 말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어쨌든 기분좋은 아침이었습니다.

교직생활 28년 동안 출퇴근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아침이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늘 그렇게 빨리 식사를 끝내는 나에 비해서 남편은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즐기는(?)편입니다. 몸에 좋다는 보약은 물론이고 과일까지 꼭 챙겨서 먹으면서도 만날 먹는 음식 메뉴가 비슷하고 고기량도 섭취가 부족하다며 중얼거리는 남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남편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일, 술 담배를 입에도 안 대는 남편. 그렇다고 친구를 많이 사귀거나 특별한 취미 생활에 깊이 빠지지도 않지요.

그의 별명답게 물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꼭 닮아가는 모습에 새삼스럽게 놀라곤 합니다. 살아계신 동안 아버님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다면 공책 한 장 정도라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아가, 왔냐?" 하시며 반가움을 표시하고
"하루 더 있다 가면 안 되겠냐?"시며 서운함을 표현하시면 그만인 어른이셨습니다. 살아계신 동안 땅과 농사가 인생의 전부이셨던 그 분을 닮은 남편이니 말수가 적은 것 당연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남편을 닮은 아들 녀석 때문에 속을 끓이고 삽니다. 아들 녀석이 얼마나 말이 없는지, 아니면 무심해서인지 휴대폰 문자요금이 달랑 40원인 것만 봐도 압니다. 술 담배도 안하고 여자 친구도 없는 녀석에게 휴대폰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물건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오는 경우에는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정도입니다.

어쩌다 전화가 오더라도 황당한 전화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엄마, 왜 휴대폰으로는 114 전화가 안 되지요?"
"지역 번호 누르고 전화했니?"
"아, 그렇구나. 서울이니까 02를 누르지 않아서 전화가 안 되었나봐요."

나는 말수 없는 남편과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시켰습니다. 주로 "엄마, 사랑해!"와 같이 유치한 단어들을 날마다 내 귀에 속삭이게 했으니까요. 나중에 아들이 커서 자기 안 사람에게 무뚝뚝한 사람이 안 되기를 빌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말수가 적어지더니 자기 아빠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유전인자의 강력한 힘을 통감하며 포기하고 살지만 그래도 가끔은 기대를 합니다. 행여나 아들에게서 문자나 전화가 오지는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무심하고 말없는 아들이 나를 자주 불러내었던 것은 전방부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수신자부담 전화로 걸려오던 전화를 받고 나면 며칠씩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선임들이 힘들게 하거나 자신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어미에게 하소연이라도 해야 다른 불미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같아 언제든지 받아주었습니다. 전방부대에서 총기사고가 날 때마다 가슴 떨리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며칠씩 연락이 없어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도 나의 안테나는 늘 서울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겉절이를 버무르다가도, 아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도 아들의 이름은 늘 내 입안에서 밥과 함께 목으로 넘어갑니다. 제대를 하고 대학에 복학한 아들이 늘 맘에 걸리지만 홀로서기에 나선 그의 인생을 지켜보는 일, 멀리서 격려하는 일밖에 없어 보입니다.

말없는 삼대를 거치며 나의 소원은 단순해졌습니다.
`제발 꼭 해야할 말은 표현하고 살자.`고 말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학교에서는 날마다 국어 시간에, 도덕 시간에 <말하기>를 목에 힘주어 가르치지만 정작 제 자식의 <말하기>는 어찌하지 못하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려서는 그렇게 명랑하고 같이 있으면 귀를 즐겁게 했던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말없는 삼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걸 보니 유전적인 영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나이 먹은 아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 계시면 도움을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선생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부모로서 자식과 친해지고 싶은 모성애를 자식이 알 때쯤이면, 그도 어미를 그리워할까요? 요즈음 나의 화두는 아들과 친해지기랍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 날부터 자식들과 마음을 터놓고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잘못을 후회하는 요즈음입니다. 선생으로서 지나온 삶에는 후회가 없지만 자식 교육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아쉬움도 크고 미안한 어미의 심정입니다. 가정의 달이라서 그런지 자식 곁에 있어주지 못한 엄마 선생님의 애환이 떨어진 꽃잎처럼 슬픈 5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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