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학교인 우리 학교는 좋은 점이 많습니다. 이른 아침 아이들보다 먼저 등교하면 학교 뒤란의 높다란 소나무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있어서 청아한 아침을 시작하는 즐거움이 그 첫째입니다. 휘파람새도 살고 찌르레기도 사는 모양입니다.
요즈음 읽기 시작한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롭게>와 잘 어울리는 아침 풍경이랍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등교할 시간이면 이루마의
과 아루투르 그루미오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6번>을 낮게 들려주며 아침 독서를 유도하곤 합니다.
아이들도 나도 창밖의 휘파람새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들으며 아침 독서를 하는 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아무런 말이 필요 없는 이심전심의 단계를 거쳐 무심의 경지에 이를 무렵이면 수업 시작으로 들어가면서 아쉬운 책과의 이별을 합니다. 이젠 더 읽고 싶어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행복한 몰입을 보면서 독서하기에성공하고 있음을 느끼며 혼자 조용히 웃곤 합니다.
오늘은 일독을 마치기 위해 방과후학교를 끝내고 아이들이 하교하는 4시를 넘기자마자 돋보기를 꺼냈습니다. 좀더 책과 가까워지기 위해서입니다. 눈이 참 시원했습니다. 이제는 멀리 있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내 발끝만 보라고 손끝만 보라고 눈조차 어두워지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아니, 내 안의 나에게 더 가까이 가라고, 안을 더 깊고 넓게 바라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소유>와 <텅 빈 충만> <서 있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빛과 소금 같은 언어로 조용한 은둔자로 살면서도 시절에 맞추어 세상을 향해 올곧은 목소리를 내며 청아한 삶을 견지하는 노스님의 말씀을 밑줄 그으며 읽었습니다. 읽는다기보다는 죽비로 맞았다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더 가지지 못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일상을 되돌아보며 나를 질책하고 내려놓음을 생각하게 하는 '스승'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목마른 영혼에 생수를 마신 듯 부스스 깨어나며 눈이 밝아옴을 느끼며 퇴근하기조차 싫었습니다. 외딴 산골에서 산 짐승들과 친구하며 나무들의 목소리를 글로 옮기는 노승의 따스한 목소리는 혼탁한 세상을 향해, 소비로 얼룩진 물질 세상을 향해 질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밖이 아닌 내면으로 돌아와야 함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조용조용 이야기하듯 다정다감한 언어로 깨달음과 지혜의 선승들이 남긴 주옥같은 언어들을 꿰어서 목걸이로 선사해줍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밝아오는 여명 속에 명상에 잠긴 듯 맑고 향기로운 내밀한 충만함으로 몇 날 동안은 피곤함을 모를 것 같습니다. 혼탁한 시대에 이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불편함과 무소유를 참살이로 인식하며 흙과 나무, 바람과 물을 그처럼 소중하게 찬미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를 즐겨 들어야겠습니다.
이 책은 그 동안 펴낸 산문집 중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글만을 다시 뽑아서 출간한 글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생수처럼, 날마다 먹는 밥처럼 가까운 곳에 두고 눈맞춤하며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스승'의 반열에 두어도 좋은 책이었습니다.어찌하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날마다 묵상하며 닳아지도록 읽을 참입니다. <법정 지음, 조화로운 삶,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