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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하마터면 때릴 뻔했습니다


오늘 아침 독서학습장을 검사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달 전에 우수 작품으로 보낸 우리 반 아이의 동시와 똑 같은 글이 감상 작품으로 다른 아이의 독서학습지에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4월에 일기장을 읽어보다가 아주 좋은 글을 쓴 아이가 있기에 칭찬을 많이 해주었지요.

그러면서 몇 번이나 자기 스스로 쓴 것인지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습니다. 일기도 잘 쓰고 언어 사용 능력도 좋은 아이라서 칭찬을 많이 해 주면서도 혹시 몰라서 여러 번 확인을 했지만 자기 글이라고 해서 철석같이 믿고 우수 작품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 독서학습장에 버젓이 올라있는 다른 시인의 작품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글을 쓴 시인의 글이 아이들 눈높이로 잘 쓰고 쉽게 표현해서 아이들이 좋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받아쓰기를 불러주며 독서학습지를 검사하던 나는 모든 걸 중지하고 사건의 전말을 밝혀야 했습니다.

"**야, 독서학습지에 쓴 이 시는 어떤 책에서 쓴 것이지? 한 번 가져와 볼래?"
"예, 선생님. 우리 교실에 있는 동시집인데요."
"그래? 지난 번 00가 일기장에 써낸 동시하고 똑 같아서 그래."
"00야, 잠깐 이리 나와 볼래?"
"예, 선생님. 왜 그러세요?"

평소에도 "예'라는 대답보다 "왜요"를 더 많이 쓰는 아이였습니다.
"여기 좀 볼래? 지난 번 00의 일기장에 쓴 글하고 똑 같네. 그 때 그 시는 00가 썼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어떻게 된 거지?"
"그건 제가 쓴 게 맞는데요?"
"그래? 그런데 이상하잖니? 네가 쓴 시하고 하나도 틀리지 않으니 말이야. 네가 글을 잘 쓰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네가 이 시를 일기장에 적은 건 아니니?"
"아니에요. 제가 쓴 게 맞아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의 시가 아님을 동시집을 펴 놓고 보여줘도 기어이 자기가 지은 거라고 우기는 아이를 보며 놀라고 당황스러운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습니다. 2학년짜리 아이라면 자기 잘못을 알면 금방 시인하는 게 보통인데 40분 넘게 이야기를 해 봐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아직 어리니까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서 자기 작품인 것처럼 하는 행위, 즉 지적재산권이나 불법복제, 등과 같은 어려운 말을 이해할 리 없습니다.

이는 정직성과 거짓말, 양심을 체득하는 과정에 있는 2학년 아이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도덕성 발달 단계로 보아 최상위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정직성을 체득해야 하는 학년이기도 합니다. 이미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좋게 이야기를 해도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학년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이 있다하더라도 사과하지 않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기애가 강하여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 자기가 졌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음을 봅니다.

조곤조곤 설명해주어도 막무가내인 아이에게 하마터면 매를 들 뻔했습니다. 그걸 참고 있자니 열이 오른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습니다. 그래도 흥분해서 매를 들거나 소리를 치는 일은 아이를 지도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감정 다툼으로 그칠까 봐 억누르고 참아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약간의 겁을 주기로 했습니다.
"00야, 네가 쓴 시라고 했으니까, 이 대목은 무슨 뜻이지? 그리고 이 말은 무얼 가리키는 말이지?"
"......."
아이는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물어도 답을 하지 못하면서도 다시 물으면 자기 작품이라고 우겼습니다.

"00야, 이 글이 정말 네가 쓴 게 확실하다면 이것을 쓴 작가를 선생님이 찾아야겠다. 남의 글을 자기 글처럼 쓰는 것도 도둑질 하는 것이랑 비슷하단다. 허락을 받고 쓰거나 누구 작품이란 것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거란다. 남의 돈이나 물건을 그 사람 몰래 가져가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글이나 음악,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져가는 것도 똑 같다는 뜻이야. 네가 그렇게 우기니까 그 작가를 찾아내서라도 밝혀야겠다. 네가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 될 일인데 끝까지 우기니까 어쩔 수가 없구나. 어때, 선생님이 그 작가를 찾아볼까?"

그제야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이는 00를 보며 나는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을 받기 위해서, 칭찬을 듣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을 중히 여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어디선가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기 잘못을 알면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깔아뭉개려는 것까지 어른들의 그것을 닮아갈까 봐 못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역할이 되는 모델의 모습을 보고 자라게 됩니다. 가까이는 부모님의 일상에서 배우고 교우 관계에서도 배웁니다. 요즈음은 다양한 매체의 힘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욕심이 많은 아이라서 지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조차 칭찬하기를 싫어하는 요즈음 아이들의 모습은 결국 어른들 세계에서 배운 우리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기뻐해 줄 수 있는 분위기,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 주는 아름다운 사회 풍토를 보고 자라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가족끼리 더 많이 어울리고 칭찬해 주고 용서하며 사과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제 나는 긴 시간을 두고 그 아이기 정직성을 키워가며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살펴봐야 할 숙제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때로는 아픈 매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대화와 설득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숨겨진 상처까지 찾아내는 탐험가가 되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그 아이를 이번 일로 섣부르게 예단하며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나 자신부터 채찍합니다.

예쁜 장미에 잠시 진딧물이 낀 것처럼, 벌레 먹은 이파리 하나를 가위질 해준 것처럼 가볍게 보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 깊게 살피는 감시병 노릇까지도 병행할 것입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어린 그 아이의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심어주며 지친 내 마음을 추스르고자 이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일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절실함이 동반되지 아니한 글쓰기는 사치스럽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나 사는 동안 그처럼 오래 눈을 맞추고 진지하고 힘들게 대화를 나눈 오늘 일을 아이도 나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성장통을 겪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행복한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아픔이 없는 가르침도 행복하지만 아프면서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선생의 자리라고 위안하며 내일은 더 행복한 교실 일기를 쓰고 싶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하마터면 아이에게 매를 들 뻔하였지만 혈압이 오르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잘 참아내며 끝까지 대화와 설명, 설득으로 잘못을 시인하게 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렵니다. 매 두 세대면 반성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을 1시간의 대화가 필요했지만 때리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지요?

다시 한번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좀더 세심하게 아이가 써 온 글을 분석하고 따지지 않고 출품한 내 잘못을 반성한 날이었습니다. 다시금 집에서 해온 글쓰기 작품은 출품하지 않아야 하며 보는 앞에서 써낸 글만이 아이의 진짜 솜씨라는 걸 뼈아프게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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