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왜 여자를 캔버스에 담는가. 그림이나 조각 속의 여성이 보여주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EBS는 13일부터 사흘간 회화사(史)를 통해 여성의 삶과 위치, 역사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 '여성 특강-정은미의 그림으로 보는 여자'(오전 10시)를 방송한다. 강의는 화가 겸 미술에세이스트인 정은미(41)씨가 맡았다. 정씨는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예술의 영역에서 '볼거리'에 불과했다고 단언한다. 여성은 권력자인 남성의 요구에 따라 몸매를 뽐내는 '생각 없는 존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 이른바 명화에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다고 정씨는 설명한다.
1부 '남자가 그린 여자'에서는 그림에 나타난 굴절된 여성관에 초점을 맞춘다. 루벤스의 유명한 그림 '파리스의 심판'(사진)은 신화에서 소재를 차용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남성이 '미(美)의 심판관'으로 확실히 드러나 있다. 오랜 기간 그림 속의 여성들은 이처럼 몸치장과 얼굴화장에만 정신을 쏟았다. 남성은 그림을 의뢰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며 감상하는 주체였지만, 여성은 그려지고 보여지는 피사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2부 '여자가 그린 여자'에서는 이런 현상에 반기를 든 여류화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이탈리아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의 반격이 그것이다. 그녀가 그린 '유디트와 하녀'에서 여성은 소극적이고 나약한 이미지를 벗고 강인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여성의 몸이 아름다움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삶의 고난, 환희, 생명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갖는 정신적·육체적 고통까지도 설치물로 표현해내기에 이른다.
마지막 3부 '오늘을 사는 여자-거울을 쥔 그녀'는 회화·매스 미디어 속에 노출된 현대의 여성을 다룬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손엔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쥐어져 있다고 정씨는 말한다. 독일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은 생로병사·희로애락으로 점철된 굴곡 많은 여성의 삶을 표현해냈다. 그림 속에서 여성이 한 인간으로 당당히 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현대의 여인이 미술사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반면 점점 비대해지는 매스미디어 속에서 여성은 또 다시 중세 미인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