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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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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카페지기의 짧은 편지> 편 지


카페지기는 어제 연하장을 한 통 받았습니다. 방금 도착한 편지를 기대감으로 열어보는 즐거움. 아직 기억하고 계신 지요. 꼽아보니 이 메일 덕분(?)에 편지를 써본 지도, 받은 지도 무척 오래되었더군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해묵은 편지를 꺼내 읽어 본 기억도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독자에게 드리는 새 해 첫 편지는, 그래서, 편지글을 모아 좀 길게 써볼까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수신인 자리에 올라 있는 편지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만은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일도 때론 비슷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발신인이 베토벤인 '베토벤, 불멸의 편지' 정도면 어떨까요. 그가 사랑하고 고민하고 즐거워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답니다. 평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음악가 베토벤의 인간적 매력, 한 번 느껴보시지요.

가상의 편지 한 통 받아보는 상상도 괜찮겠지요.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300년 전 병든 프랑스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번득이는 재치와 기교로 가득한 서간체의 풍자소설이랍니다. "정의는 인간이 실존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네"라는 말로 당시 사회의 각종 폐해를 꼬집는 몽테스키외의 비판 정신이 지금껏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역시 그 뿌리에,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녹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편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뭐니뭐니해도 연애편지 아니겠습니까.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던 칼릴 지브란과 마이 지아다. 한 달에 많아야 한 번씩 힘겹게 편지를 받고 보낸 두 지성의 사랑을 담은 '칼릴 지브란의 러브레터'는 위대한 시인이 멀리 동방에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연서인지라 편지 하나 하나가 모두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 하답니다. "신께서 저 대신 그대를 지켜주시기를"로 끝나는 단아한 편지 한 장 받고 싶습니다.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편지지 위에 어눌하지만 꼭꼭 눌러 쓴 글씨로 안부를 묻는 그런 편지를….

연서만이야 하겠습니까 만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만큼 맑은 향을 뿌리는 것도 흔치않지요. 명정·정성욱의 '편지'에는 경봉 큰스님이 경허, 만해, 성철 스님 등과 나눈 서간문이 가득합니다. 글귀 사이사이 청정한 향취가 가득한 책이지요. "스님, 거울은 본래 평면인데 봉우리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천 구비 경사진 것이 하나의 곧음만 못하니…"

경봉 스님은 언제나 벗을 소중히 하고, 그 벗에게 스님은 늘 편지를 썼다지요. 고승들의 명징한 대화에 빠져 '편지'를 읽다보니 문밖엔 벌써 어스름이 내리는군요. 오늘밤엔 그리운 벗에게 짧더라도 진짜 편지 한 장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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