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코미디 황제였던 이주일의 맨트가 아니다. 명절을 맞이하여 학교에 못찾아가 뵈어서 죄송하다는 학부모의 메시지이다.
늘 때가 되면 학교를 찾아가야 되지 않을까? 선물을 들고 가서 눈도장을 찍어놔야 하지 않을까? 아니라고 했는데도 그렇게 안하면 막상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막연한 불안의식이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다.
‘혹시 다 하는데 나만 안하는거 아냐?’
선물을 들고 왔다가 다시 되들고 가야하는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선생님 집주소를 용케 알아내어 선물을 보냈다가 수취거부로 다시 되돌려받는 경험을 했으면서도 이런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하는 모양이다.(요즘의 정보력은 기가 막히다. 이런 점 때문에 선생님께 편지쓰기도 없애고, 그 어떤 경우든 주소는 절대 가르쳐주지 말라고 행정실에 단단히 부탁했음에도 어디서들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내는지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담임의 원칙과 소신을 믿고 그대로 따라주는 학부모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혹시나 하고 불안해하던 극소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이해하게 되고 따라주니 그렇게 문제될 것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도 개인차가 있듯이 받아들이는 수용면에서 빠르고 느린 어른의 개인차일 뿐이기에. 그래서 나는 전폭적으로 담임을 믿고 말없이 지지해주는 우리반 학부모가 무척 고맙다.
우리나라의 최대명절인 추석, 이런 특별한 날은 그냥 편하게 “못 찾아뵈서 죄송합니다”라는 군더더기 빼고 그냥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그런 메시지 하나로도 충분한 날이다. 아니 굳이 메시지를 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명절 증후군(주부명절증후군, 남편명절증후군, 아이명절증후군, 싱글명절증후군)이니 뭐니 하면서 혈연을 챙기기도 바쁜 날이기에….
그리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한가위는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을 만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최고 명절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중추절에 상사나 선생님이라는 군더더기의 선물 치레로 오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확실하게 일러줘야 한다. 면면히 이어내려오던 우리 고유의 명절에 혈연이 아닌 타인의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멍드는 그런 이상한 풍속은 이제 끝을 내야한다.
어떤 한가지의 풍속이 생겨나기는 쉬운 법이다. 하지만 없앨려면 뼈를 깎는 아픔이 뒤따라야 한다. 그게 좋은 풍습이라면 더 멋지게 다듬어서 미풍양속으로 면면히 이어나가야하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짐이 된다면 일찌감치 잘라내야 한다. 만나긴 쉽지만 헤어지기는 어려운 연인의 관계처럼 그 놈의 정 때문에 나쁜 풍속도 한번 맛을 들여놓으면 끊기가 어려운 법이다. 막연히 기대하게 되고 못받으면 섭섭하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법이다.
그래도 고집을 부려 타인에게 하고 싶다면 가족이 있으면서도 돈 때문에 명절에도 가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기부하는 것이 훨씬 보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지 않고 나눔의 따뜻한 손으로 인해 삶의 희망 한 자락을 잡을 수 있는 갱생의 추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발 부탁하노니 얄팍한 상인들은 이런 문구로 서민의 주머니를 현혹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추석선물 어떻게 정할까? 부모님과 일가친척 - 한우나 수산물 세트, 곶감 과일이 무난 직장상사 - 피부주름을 없애는 레이저시술권, 스킨케어 관리 상품권 추천 선생님 - 여자선생님 화장품, 남자선생님 양말세트나 건강차가 인기
자기네 물건을 팔기 위해서 아무데나 선생님을 끼워넣지 않기 바란다. 인터넷상에 추석선물을 치면 연관검색어에 ‘선생님선물’이 나오는 그런 뜨악함은 없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추석명절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직장상사를 끼워넣어 추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나쁜 짓은 하지말길 바란다.
‘못찾아뵈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나 일가친척이 받아야 마땅한 말이고, 각종 명절증후군으로 인해 미풍양속으로 년년히 이어져오는 추석 명절이 괴롭다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향에 갔다오면 명절증후군이 아닌 입가에 미소를 함박 머금고 오는 기쁨증후군으로 충만한 추석명절이 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