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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편지> 영웅

"뻥을 치려면 이 정도는 쳐야지"


영화 '영웅'은 '거짓말' 때문에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무명이 진나라 왕 영정을 찾아 자신이 은모장천과 파검, 비설을 차례로 꺾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인 것처럼 묘사되던 그의 진술은, 두 번 '부정'됩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영화는 색이라는 기교의 옷을 갈아입습니다. 한 번 기술된 사건을 다른 풍광으로 장식한다는 점에서 색은 '거짓말'의 거대한 테두리가 됩니다. 진술에 의해 본질이 뒤바뀌는 '뻥'은 이렇게 펼쳐집니다.

# 레드…새빨간 거짓말: 파검과 비설이 은둔한 서예 학교를 포위한 수십, 수백만의 진나라 군대. 그들이 한꺼번에 쏘아대는 화살은 까맣게 하늘을 덮습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이 장관은 누가 봐도 '거짓'이지요. 숱한 화살에 맞지 않는 서예 선생이나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두 막아내는 무명과 비설. 실제가 아닌, 무명의 입을 통해 진술된 '새빨간 거짓말'이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 블루…거짓에 끼얹은 시퍼런 찬물: "자네는 한 사람을 과소평가 했다, 바로 과인이다" 영정의 한마디를 기점으로 영화는 반전됩니다. 그러나, 물에 비친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파검'과 '무명'의 믿을 수 없는 칼 솜씨. 파검과 비설의 칼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왕궁 호위대의
병사들 역시 '거짓'이었습니다. 사실의 옷을 벗기고 신화와 전설의 도포 자락을 입혀 거짓을 자처함으로써 '거짓말'은 가히 경지에 이릅니다.

# 그린…초록의 희망은 진실 가까이: 파검이 영정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수없이 드리워진 초록의 커튼이 칼날에 떨어질 때마다 점점 진실에 가까워집니다. 파검과 비설이 사랑하면서도 멀어지는 이유가 희망에 대한 가치관 차이 때문이라면,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요.

# 화이트…하얗게 드러나는 진실: "폐하께서도 한 사람을 과소평가 하셨습니다, 바로 파검입니다" 무명의 한 마디로 다시 급반전. 영정마저 감동시킨 암살자의 이상, 그리고 실패를 선택한 영웅의 희생. 순백의 이미지로 영화는 대단원에 이르지만 이 순간마저 수만 개의 화살을 가볍게
막아내던 무명이 수천 개 화살에 맞아죽는 '거짓말'같은 비장미가 연출됩니다.

무협의 광대한 '공갈'이 주는 쾌감의 취기는 '중화천하(中華天下)'라는 영화가 품고있는 너무나 명백한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별 것 아닌 것으로 바래게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뻥을 뻥으로만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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