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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어느 노학자의 간절한 당부

2009년 1월 9일(금), 우리 학교 도서관에 1,000여 권의 소중한 책이 들어왔다. 학교 예산으로 사온 책이 아니라 기증을 받은 도서이기 때문에 더욱 귀중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도서를 기증한 장기옥 박사는 충남 서산 출신으로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다 상경,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수학한 후 국가고시를 통해 교육관련 부서에서 첫발을 디딘 후 교육부 차관까지 지낸 유명인사이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관리자로도 봉사하셨고, 신성대학에서는 9년 동안 학장과 이사장으로 경륜을 펼치기도 했다. 일흔넷의 노령임에도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교육학과 교양 강의를 활발하게 하다가 작년에서야 강단을 떠났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장 박사님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던 나는 기대와 설렘을 갖고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와 김학상 씨가 기증 도서를 받기 위해서 트럭을 몰고 그분의 임시 숙소인 평택의 작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박사님은 미리 책을 다섯 묶음으로 꾸려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평생을 공직과 교육계에 몸담아 오신 체취가 물씬 풍겼다. 다소 작은 체구에 인자한 얼굴은 전형적인 학자풍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책을 싣고자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자택으로 이동하는 동안 박사님은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동안의 인생이 화려하면서도 한편으론 회한이 묻어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사님의 말씀을 듣는 내내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박사님은 수십 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일체의 청탁과 부정을 거부하는 청백리의 모델이었다. 그분이 교육부 차관으로 임용되었을 때 한 신문은 머리기사에 '바보스러울 정도로 청렴한 공직자'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인생을 정리하는 황혼기에 있는 현재 박사님의 전 재산이라고는 지금 사는 아파트 한 채가 전부라고 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인 말씀은, 인생의 최대 실수담에 관한 것으로 당신께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경험이라고 했다. 출마를 하게 된 이유는 주변 정치인들이 권유한 까닭도 있었지만,무엇보다도 즉흥적인 선택이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그 무렵 정치권의 비리와 몰상식에 대한 염증이 심하던 차에 자신이 의회에 진출하여 정치환경을 정화하겠다는 의지가 홧김에 표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박사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매사에 신중하고 자제력을 키우라는 것, 둘째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박사님은 그동안 너무나도 바쁜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책을 집필할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서전을 집필할 계획이란다.

아파트 16층에 있는 박사님의 집에서 50묶음의 책 다발을 옮기면서 나는 감히 힘든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수고를 못내 미안해하면서 여의도의 한의원행 버스를 타려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한 노학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나는 경외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 책들을 도서관에 비치했을 때 학생들이 비록 책을 꺼내 읽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한 노학자가 평생을 열심히 연구하고 모범적인 삶을 영위한 자취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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