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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일학년 아이들이 고쳐준 나의 늦잠병

1학년을 담임하면서 싹 고친 병이 있다. 발령나고부터 쭈욱 계속되던 나의 지병…. 바로 늦잠병이다.

‘아침 햇살이 창틈으로 내 눈을 부실 때쯤 눈을 뜨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출근했다가 별이 부서져내릴 때쯤 퇴근하는 학교는 없을까?’ 저녁형 인간에 속하는 나는 못다잔 잠에 대한 아쉬움을 이런 상상으로 대신하곤 한다.

콘크리트 빌딩숲, 그리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복잡함이 싫어서 서울을 뒤로 하고 산좋고 물좋은 경기도 땅에 살고 있는 나는 아침 출근길이 완전 전쟁이다. 똑같은 시간에 출발했음에도 그 날의 차막힘 상태에 따라 일등으로 출근할 때도 있고, 숨이 턱에 닿아 간신히 수업시간 전에 교실에 들어설 때도 있다. 안 막히면 20여분이면 닿고도 남을 곳이지만 막혔다하면 주차장이 된 88올림픽도로에서 1시간 넘게 발을 동동 굴러야할 때도 있다.

늘 출근전쟁을 치르는 내게 왜 출퇴근이 쉬운 서울 땅 놔두고 교통편이 시원찮은 데서 사서 고생이냐고 서울로 입성하라지만 난 그럴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직장이 아닌 내 집만큼은 좀 더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고역인 날은 월요일이다. 차막힘이 장난이 아닌 탓이다. 그럴 것을 감안해서 일찍 서둘러야 함에도 평소때랑 다름없는 시간에 출발하면 영락없이 늦게 된다. 정신이 맑은 아침에 학급문고의 책을 읽기로 아이들과 약속했고, 선생님은 그보다 더 빨리 와야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될 때가 주말 뒤의 월요일이다.

월요일 아침, 숨이 턱에 닿아 교문에 들어서면…. “아유, 내가 선생님 땜에 못살아. 왜 이렇게 늦었어요. 기다리느라 힘들었잖아요?”라며 하염없이 날 기다리는 여학생이 있고, 또 현관 안으로 들어가면 학교 직원을 붙잡고 “우리 선생님 어디 있어요?” 찾아달라고 떼쓰는 남학생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한뭉태기로 몰려나와 “와, 선생님 오신다!” 하면서 달려오는 통에 무슨 큰 일이 난 것 같이 호들갑을 떠는 탓이다.

다른 반처럼 조용히 선생님이 계시건 말건 스스로 아침 자습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괜찮은데 유별나게 티를 내는 탓에 난 여유도 못부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일학년이고보니 나는 늦잠을 자려고 하다가도 우리반의 예쁜이가 비를 맞고 운동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똘똘이가 나를 찾으러 또 돌아다닐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어김없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도 고칠려고 해도 안 되던 이른 출근이 아이들로 인해 되었다는 말이다.

늘 내가 녹음기처럼 아이들에게 되뇌이는 잔소리.
“남에게 피해를 주지마라. 콩 한쪽도 함께 나눠라.”

지시와 호통만으로 외동 특유의 버릇을 고치려던 내게 아이들은 그네들만의 과한 반김으로 나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게 만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질책이 아닌 지극한 관심임을 아이들로부터 깨닫는다.

학년이 바뀌었음에도 쉬는 시간이면 “선생니임~” 하면서 달려와 한번 안아줘야만 가는 일학년 아니 지금은 2학년이 된 아이들은 알까? 자기네들이 발령나고부터 쭈욱 계속되던 나의 지병인 늦잠병을 고쳐주었다는 것을? 내가 아이들을 사랑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더 사랑해주었다는 것을 깨닫는 아침이다. 오늘도 나는 학교에 제일 먼저 출근하여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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