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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쌀 직불금, 안 받았어도 명단보고 하라니

며칠째 보았던 같은 제목의 엑티브 포스트 내용이 또 보인다. 예사로 보았던 내용이 예외라고 여겼던 나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그래서 당장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다급한 연락이다. 내용은 이렇게 자세하다.

- 만약 미기재 하실 경우, 미기재 사유 반드시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 배우자 없으신 분은 미기재 사유 미혼이라고 기재해주시고
- 직계존속의 경우 주민등록상 세대를 달리한다면 미기재 사유에 세대를 달리함이라고 기재해 주시고,
- 직계비속의 경우 세대를 같이할 경우 작성해주시고
- 세대를 같이 하더라도 1990년도 이후 출생일 경우 미기재 사유에 1990 년도 이후 출생이라고 기재해 주시면 됩니다.
- 바쁘시더라도 오늘까지 꼭 좀 부탁드립니다.
* 붙임1 미신고자 명단 작성요령 1부, * 붙임2 미신고자 확인서 1부

미신고자 확인서라는 양식을 보니 본인과 배우자는 물론 직계존속, 직계비속의 주민등록번호, 주소까지 적도록 되어 있는데 미기재이면 그 사유를 낱낱이 적도록 예시하고 있다. 사망이면 사망, 미혼이면…

쌀 직불금 부당 수령 공무원에 대한 보도가 큰 물의를 일으키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후 잠잠하던 학기 초에 쌀 직불금과 관련된 보고 때문에 신고를 당부하는 내용이 교내 전산망을 통해 여러 번 연락이 왔지만 대다수 교직원들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이니 신고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했으며 전국적으로 대부분 같은 인식을 가졌을 것이다.

며칠 후 ‘쌀 직불금 미신고자 명단 작성' 대상자가 모든 교직원이라는 내용이 다시 올라왔어도 쌀 직불금 수령 대상이면서 직불금을 받은 사실이 있는 사람이나, 수령 대상자이지만 직불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보고 대상인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와는 무관하며 명단 제출 대상이 안 된다."라고 믿고 있는 몇몇 사람에게는 아침에 다시 제출을 독촉하기에 바쁜 분이 계신다.

조상으로부터 밭 한 뙤기라도 물려받은 사람, 스스로 농사일이 좋아 손바닥만한 밭을 가지고만 있었지 쌀농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도 보고 대상인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정보력이 뛰어난 열린 공무원이다. 입에 톡 털어 넣어 보려 한들 농토 1㎡도 없고 그래서 쌀 직불금 받을 처지가 안 되는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예 보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심지어 행정실 직원들마저도 조사 대상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윗선에서 보고 대상 범위를 연거푸 수정해 다시 보고하라고 귀찮게 한 것은 아닌가?

공직생활을 하다보면 수십 년 똑 같은 보고를 해마다 하라는 전달을 받고 반복해 기록 제출하는 문서가 있어 시급한 개선이 요구된다. 학교에서는 매년 주당 몇 시간을 가르치고 호봉은 얼마이고 출신은 어떻고 잡무는 몇 시간…이라고 적어 내는 양식 말이다. 변경된 내용만 새로 입력하도록 왜 고치지 못하는지. 

이런 지경에 이번 <쌀 직불금 수령 미신고자 명단보고> 사태를 겪어 보니 잘못된 제도 입안과 그 처리과정의 미비점이 얼마나 불편부당한 과잉 행정실태이며 국가예산 낭비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죄 없는 사람들의 주민번호와 주소 등 가족 사항, 미제출에 대한 이유까지 알뜰히 적어내도록 만들어 놓은 양식을 보면 대부분 개인 정보유출을 염려하며 괜스레 불편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아니라 온 마을을 불태우는 광경을 보는 듯하다.

조사하는 이나 보고하는 공무원 모두의 시간적 정신적 노력의 낭비인 점을 직시하여 다시는 '쌀 직불금 미신고자 명단 작성 사태'와 비슷한 행정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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