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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할머니께서 봄을 선물하셨어요"


“선생님, 이거 할머니가 갖다 드리래요.”
도회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예쁜 여학생이 비닐봉지를 내민다.

“이게 뭐야?”
“냉이래요. 할머니가 직접 캔거래요.”
“우와, 정말? 할머니께서 봄을 선물하셨네. 아이 좋아라.”

콘크리트로 뒤덮인 서울 한복판에서 봄나물을 선물로 받다니 너무도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도 할머니께서 직접 캔 냉이라고 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봄내음 향긋한 냉이는 깨끗하게 씻어져 비닐봉지에 얌전히 담겨있었다. 어쩜 이렇게 게으른 내 못된 행실을 미리 알고 냉이를 다듬고 씻어서 보내주셨는지 우리 할머니가 살아돌아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곱게 쪽진 모습이 단아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봄이 되면 지천에 있는 나물을 뜯어 식단을 차리곤 하셨다. 똑같은 음식을 해도 할머니가 하면 별 양념이 없어도 맛있는데 이상하게도 며느리들이 하면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도 별맛이 없곤 했다. 할머니의 손엔 맛의 마법이 깃든 모양이었다.

늘 넉넉히 품으로 안아주는 할머니가 좋아 난 스토커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할머니, 이거 냉이 아니예요?”
“그건 지청구라니까?”
“하여튼 공부는 잘한다면서 나물 이름은 맨날 가르쳐줘도 몰러.”

할머니는 눈을 곱게 흘기며 지청구 하셨다. 그 지청구에는 사랑이 듬뿍 담겨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요건 냉이 맞죠?”
“그건 씀바귀라니까? 잎사귀가 틀리잖아.”
“아하, 음악책에 나오는 씀바귀?”
씀바귀라는 말에 절로 노래가 나왔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캐오자
종달이도 높이 더 노래부르네
.

내가 종달새처럼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자 할머니는 웃음꽃을 피웠다.

“어릴 때 그렇게 울어서 애미 잠도 못자게 하더니 노래도 잘부르네. 가수가 될려나.”

할머니는 입담이 참 좋은 분이셨다. 그래서 할머니의 옛날 얘기는 듣고 또 들어도 좋았다. 그래서 메주 냄새가 폴폴 나는 사랑방에서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곤 했다. 내 동생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안방에서만 잤는데 난 유독 할머니방만 고집 했었다.

할머니가 다시 살아돌아와 나를 밥상으로 부를 것만 같은 봄나물 냉이...
“명숙아, 어여 와. 밥 먹어!”
어찌나 반갑던지 일찌감치 퇴근하여 냉이된장국을 끓였다. 덕분에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었다. 신기하게도 월요병은 어디갔는지 금새 달아나버렸다.

괜시리 올봄에는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이 기분!
우리반의 예쁜이 할머니께서 준 냉이가 봄뿐 아니라 희망을 선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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