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공동묘지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걸어봤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나. 난 무서웠다. 초등학교 땐 학교 뒤편에 있는 공동묘지로 소풍을 갔고 그곳에서 보물찾기와 장기자랑을 했다. 늘 가까이 해서 친숙할 만도 하지만 무덤은 늘 낯설고 무서웠다. 특히 공동묘지에서 귀신이나 도깨비 등을 봤다는 청년들이나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란 나에게 묘지는 터부시의 공간이었다.
그런 묘지가 나이가 들면서 무서움보다는 어느 틈엔가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옴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홀로 산길을 걷다가 양지 바른 무덤가에 앉아서 이러저런 상념에 젖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묘지는 아직도 낯선 이방인의 공간처럼 생각됨은 내가 이승의 사람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묘지는 죽은 자들의 집이다. 공동묘지에 가보면 비석도 없이 묘만 덩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름도 없이 살다가 간 이들의 무덤이다. 살아서 이름깨나 있는 자들은 무덤 앞에 비석이나 연보비 등을 세워놓고 그를 기억했다. 망우리 공원에 가면 이름 없는 무덤들과 이름 있는 무덤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60년대까지 격동기를 살아갔던 역사적 인물들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망우리공원'으로 불리지만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망우리공동묘지'라고 불리었다. 공동묘지가 '망우리공원'으로 바뀌면서 이곳은 유명인사의 연보비 건립과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 자들의 무덤이 많다.
그 '망우리공원'을 3년간 현장답사를 하고 자료조사는 물론 유족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 있다. 수필가인 김영식이다. 그는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라는 부제를 달고 온 <그와 나 사이를 걷다>(골든 에이지 펴냄)를 통해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는 유명인사 40인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무덤 속에서 말하고 있는 40인의 이야기
그 속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했던 아이들의 산타 소파 방정환부터 시작하여 화가 이인성과 이중섭, 만해 한용운, 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설산 장덕수 등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업적을 남긴 인사들이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음을 찾아내고 그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가사가 세 번(정지용의 '고향'에서 박화목의 '망향'으로 그러다 이은상의 시 '그리워'로 바뀌었다 근래에 다시 '고향'으로 불리움)이나 바뀐 곡의 작곡가 채동선, 낙엽 따라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가버린 '오빠'의 원조 가수 차중락, 해방 정국에서 좌우익의 희생자인 삼학병(三學兵),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일제 말기 친일의 행위로 속죄의 말년을 보낸 박희도도 망우리에 묻혀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또 하나 망우리공원에 두 사람의 일본인이 묻혀 있고 그 두 사람의 이야기와 사연도 적고 있다. 한 명은 한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다. 그는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에서 조선의 산림녹화에 힘썼고 개인적으로 조선의 민예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그는 대다수의 일본인과는 달리 조선말을 하고 조선옷을 입고 조선의 이웃으로 살며 진정으로 조선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죽어서도 조선의 땅에 묻혀 지금 망우리공원에 있다. 또 한 사람은 한반도에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은 사이토 오토사쿠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는 유명 인사들의 탐방기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3년간의 발품과 자료 조사, 유족들의 취재를 통해 쓴 책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알려진 사실과 내용들도 있다. 가수 차중락과 한국야구의 원조인 이영민의 이야기다.
가수 차중락은 60년대 여인들의 가슴을 울려놓고 27세에 요절한 가수이다. 그에겐 그를 사랑했던 미국 여대생 '알린'이라는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알린'의 편지와 사진을 차중락 사후 40년만에 처음 공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일제 하에서 동대문구장 최초로 홈런을 친 원조 야구스타 이영민의 활동을 일본 자료까지 동원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당시 지금 이승엽이 활약하고 있는 요미우리에 스카우트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이영민을 야구팬들을 거의 모른다. 하기야 야구협회에서조차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일반인은 어찌 알겠는가 싶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그를 이용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서 비참했던 한 예술가는 죽어서 대접받고 추앙받고 있지만 그는 죽어서의 영광보다는 살아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을 만나길 더 소망했다. 그러나 그는 가난 때문에 죽고 말았다. 화가 이중섭의 이야기다. 이에 대해 시인 구상은 이중섭의 말년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중섭이 병들어 미쳐 죽었다고도 하고 굶어 죽었다고도 하고 자살했다고도 한다. 정신병원엘 두 차례나 입원까지 했으니 병들어 미쳐 죽은 것도 사실이요, 먹을 것을 공궤치 못했으니 굶어 죽인 것도 진상이요, 발병 1년 반 그나마 식음을 완강히 거부했으니 자살했다 하여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그를 살게 하고 죽게 한 것은 오로지 '고립'이었다. 중섭은 너무 그림밖에 몰랐다. 그의 생존의 무기란 유일 그림뿐이었다."
이중섭은 살아서 가족을 너무나 보고 싶어 했다. 일본에 둔 두 아들이 보고 싶어 길거리의 아이들을 데려와 몸을 씻겨줄 만큼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못 보고 병원에서 외롭게 죽었다. 죽은 뒤에서 무연고자로 처리돼 방치되었다 고향 친구 김이석(소설가)에 발견되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살아서 그림 한 점 팔기도 어려워 가난에 살다간 그는 망우리공원에 외롭게 묻혀 있는데 산 밑의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가지고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통해 한다.
"자본은 예술가를 키우는 스폰서의 기능도 하지만, 예술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예술적 가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중섭을 죽음으로 이끈 바로 그 세상의 사람들은 미술시장에서 최고가 된 브랜드 네임 '이중섭'을 연호할 뿐, 그의 고뇌와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예술은 곧 사기'일 뿐이다. '브랜드' 이중섭이 경매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때 '예술가 이중섭'의 망우리공원 묘지는 찾는 이 없어 황량하기만 하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연유를.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렸거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이 망우리란 숲속에서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땅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곳 망우리공원은 우리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온 몸으로 체험하기에 다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죽은 자의 집(묘지)은 말이 없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망우리공원이 그렇다. 이곳엔 이름 없는 민초들로부터 격동의 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유명 무명의 독립지사들의 무언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친일과 좌익의 멍에를 메고 무겁게 잠들어 있는 혼령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또 당대 최고의 시인과 소설가, 의사, 학자, 정치가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비석 하나 없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자잘한 사연까지 들을 수 있다. 망우리공원에선. 혹 이런 소릴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 한 권과 소주 한 병을 들고 망우리공원을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술 한 잔 따라줄 술잔이라고 있으면 더욱 좋겠다. 술잔이 아니면 꽃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