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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행복한 선물- 우리 반의 풍월개

며칠 전,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가르친 제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합을 하듯 선물을 보내고 꽃을 보내는 바람에 조용히 돌아보는 마음으로 지내려는 나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스승의 날은 내가 교단에 처음 서던 날의 다짐과 열정에 나를 비추어보며 무디어진 자세를 가다듬고 여미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부모님과 아이들에게는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랑하고 가르치겠노라는 다짐의 편지를 보내며 아무것도 가져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지요. 오히려 속옷 하나라도 챙겨주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 마음 곁에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20년이 지났건만 변함없이 나를 찾아주는 제자들은 모두 6학년이었고 학교가 끝난 밤이면 내 방에 찾아와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책을 읽다가 함께 내 자취방에서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곤 했던 추억 속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조차 없었던 그때는 매달 학력평가를 보고 실과 시간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의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할 때면 청에 못이겨 주례를 맡아주며 행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이제는 내 자식 못지않게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 그리운 이름으로 서로를 간직하고 살게 되었으니 교직이 내게 안겨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옛 제자들의 선물은 이제 마음의 빚으로 남아 갚을 생각을 하는 스승의 날.

그런데 가장 행복한 선물은 바로 우리 교실에서 받았습니다. 아침독서를 마친 우리 반 아이들 12명과 나는 전날 지도한 편지를 가지고 작년에 우리 반 아이들을 가르쳐 주신 1학년 선생님께 가서 감사의 편지를 드리며 사랑한다고 안아드리게 했습니다.

행복해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들뜬 마음으로 숙제검사를 하고 언제나처럼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읽기 책 한 쪽에서 문장 중심으로 받아쓰기를 하면서 띄어 쓰기, 바르게 쓰기, 예쁜 글씨까지 잘해야 300점을 줍니다. 300점을 받은 아이는 공책과 모둠 포인트, 월말에 내가 주는 동화책을 선물로 받는 후보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때로는 수학 문제나 책 이름을 맞춰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서 아직도 받아쓰기가 매우 서툰 00이가 '사각형은 네 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도형'이라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써서 깜짝 놀랐답니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알고 있는 지 물어보았습니다.

"00아, 원은?"
"예, 선생님. 동그란 모양의 도형입니다."
"그럼 선분은?"
"예, 선생님. 두 점을 곧게 이은 선입니다."

"우와! 기적이 일어났구나. 드디어 우리 00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었어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그러자, 듣고 있던 작가 지망생인 찬대가,
"선생님, 그럼 00이가 풍월개입니까?"

"하하하, 뭐라고? 우리가 날마다 중요한 것을 외우다보니 이젠 자동으로 잘하게 되었다는 뜻이지.
얘들아, 우리 00이에게 칭찬의 박수를 힘차게!"

일취월장 좋아지는 00이나, 멋진 멘트를 날리는 찬대를 바라보며 나는 하마터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친구가 잘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 일처럼 행복해 하는 아이들도 보기 좋았습니다. 오래 전 제자들이 보내오는 선물이 주는 기쁨보다 더 가슴 뜨거운 보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제 00이는 다른 아이들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감을 얻고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 가르치는 보람을 눈으로 확인하며 행복했습니다. 나는 그날 만나는 사람들에게 00이 자랑으로 즐거웠답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제자가 잘되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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