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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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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 책가방이 무거워요"

아침밥을 혼자 먹는 아이

"00이 아빠, 8시 40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00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학교차가 기다려도 안 나왔답니다.집 안에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그래요? 학교차를 놓쳤나봅니다. 집에 전화 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00이는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아이입니다. 아빠가 아침밥을 지어놓고 일찍 일을 나가시기 때문에 중간에 깨워서 밥을 먹게 하고 학교차를 타야 합니다. 아직은 어린 2학년 꼬마가 빈 집에서 혼자 일어나서 홀로 밥을 먹고 학교에 오는 풍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립니다. 가정불화로 집을 나간 엄마 이야기를 결코 말 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아픔이 얼마나 클까요.

그래서인지 그 아인 2학년이지만 몸무게도 키도 작아서 1학년보다 어리게 보입니다. 제대로 밥을 못 먹고 다녀서인지 점심밥을 먹는 일도 힘겨워 합니다. 곁에 앉아서 이것저것 챙겨 먹여야 겨우 식사를 끝내는 아이, 늘 토하는 게 습관이 된 아이의 모습을 보면 슬픈 생각마저 들곤 합니다.

아이와 연락이 되었는지 아이 아빠의 전화는 포기 상태였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늦었으니 집에서 책을 보라고 했습니다."
"안 되지요. 저 혼자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그리고 점심밥도 먹어야지요. 공부도 해야 하고요. 학교차를 놓칠 때마다 그렇게 하시면 소극적인 아이가 되지 않겠어요? 걸어서 1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이니 지금 오면 됩니다."

“걸어서 가라고 하니까 가방이 무겁다고 안 간다고 합니다."
"예? 가방이 무겁다고요? 제가 집으로 전화를 해서 설득할 테니 아빠는 걱정 마시고 일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다시 집으로 전화를 하니 다행히 아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00아,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니? 어서 학교에 와야지.
“선생님, 가방이 무거워요.”
“그래? 책가방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집에 두고 어제 숙제만 가지고 오렴. 차 조심하고 얼른 오세요.”
“예, 선생님.”

그렇게 전화를 했는데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앞서서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하니 아직도 출발하지 않은 아이. 걸어서 10분 거리인데도 혼자서는 학교에 올 엄두를 못내는 모습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혼자 걸어오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수업하는 도중 내 눈은 계속 교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서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재촉을 했습니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 길을 10분도 혼자 걸어올 수 없다면 앞으로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를 어찌 감당할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학교 통학차를 매번 기다리게 하는 아이, 혼자서 제대로 밥도 못 먹는 아이, 10분도 걸어 다닐 수 없는 아이라면 분명히 따져 봐야 했습니다.

다시 한 시간 뒤에야 도착한 아이를 반겨 맞으며 먼저 가방부터 들어보았습니다. 2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아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책가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교를 오지 못할 만큼 먼 거리도 아니니 지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00아, 이제부터는 좀더 일찍 일어나서 스스로 잘 챙기면 좋겠구나. 책가방도 잠자기 전에 미리 챙겨두고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면 덜 무겁겠지? 그날 배운 책만 갖고 가서 복습하고 다른 책은 교실에 두고 다니세요. 앞으로는 학교 통학차를 놓치면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오는 거야. 그럴 수 있지? 그래야 다리도 튼튼해져요. 앞으로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밥 먹고 학교차를 타는 거야. 약속!”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는 날마다 마음을 졸일 것이고, 홀로 남은 아이는 혼자서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책을 좋아해서 이해력도 빠르고 마음 씀씀이도 의젓합니다. 아픈 상처를 딛고 살아가기엔 너무 어린 아이지만 그래도 밝은 모습으로 동화책 속의 주인공처럼 귀엽고 깜찍한 말을 잘하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 속에 담긴 깊은 슬픔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홀로 선 나무지만 스스로 커야 한다

그래도 겉으로 예뻐하고 동정하면 그 아이가 약해질까 봐 강변을 하곤 합니다.
“00아, 아홉 살이면 옛날 사람들은 시집 장가도 갈 나이란다. 꼬마 신랑 이야기 못 들어 봤니? 그만큼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야. 다른 친구들처럼 집에서 너를 봐 주는 사람이 기다려 주진 않지만 스스로 할 수 있지? 씩씩하게 자랄 수 있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독서발표 시간이면 어느 누구보다 또렷하고 야무지게 이야기를 하는 예쁜 아이, 어려운 독해력 문제나 상상하여 발표하기 시간이면 깜짝 놀랄 아이디어로 웃음을 주는 꼬마 아가씨가 지금처럼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를 빌어봅니다.

오늘도 00이는 가족대신 저를 기다려주는 개와 고양이들 속에서 함빡 웃음을 날릴 것입니다. 이제는 틈나는 대로 그 아이 가방을 열고 무게를 줄일 수 있도록 해주는 일, 가끔은 아빠 대신 아침잠을 깨워주는 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외로운 존재임을 생각한다면 그 아이가 이렇게 일찍부터 겪는 외로움은 더 강한 나무가 되게 할 거라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엄마 곁을 떠난 강아지도, 고양이도 다 혼자 사는 거란다. 저 산에 나무들도 다 혼자 서 있다고. 풀 한 포기도 혼자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살아간다고 말입니다.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만이 강해지는 거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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