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은 유월의 녹음은 갈아낸 녹즙처럼 질펀한데 검은 비구름 사이로 내민 태양은 얄미울 정도로 얼굴이 곱군요. 유월 들어 네 번째로 맞이하는 일요일 오후를, 저는 후텁지근한 실내공기를 피해 들길을 산책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내기를 끝낸 무논에서는 어린 벼들이 일렬 종대 혹은 이렬 횡대로 서서 튼실한 뿌리를 내리며 푸르러지는 모습이 아름답기가 그지없었습니다. 눈부신 질서, 그리고 활발한 생육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몸 속에 무엇인가 기분 좋은 것이 가득 찬 것처럼 뿌듯함을 안겨줍니다.
어제 오전에는 하정우, 성현아 주연의 '시간'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 미와 성형 그리고 부부간의 사랑과 권태란 단어로 한동안 생각의 심연에 빠져있었답니다. 미리 결론을 내리기는 성급하지만 사랑에 있어 남녀간의 관념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저는 이러한 고민과 생각의 생각을 혼자서 일부러 즐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먼저 가르치느냐, 아니면 인성을 먼저 가르치느냐'를 생각의 화두로 붙잡고 밤낮을 고민하는 것처럼….
저는 전망이 좋은 곳을 만나면 걷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때론 구보도 하면서 우리 교육을 생각했습니다. 쪽빛으로 얼굴을 내민 하늘, 잔혹할 정도로 짙푸른 논두렁, 무성한 떡갈나무숲, 가슴을 아리게 하는 망개나무의 넓은 잎들, 그리고 이름 없는 잡초와 가슴에 어리는 이름 모를 그리움…. 그리고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불안과 통증.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논두렁길에 어느새 우렁이가 자잘한 새끼들을 낳았더군요. 흑채처럼 검게 갈라진 틈새로 좁쌀크기 만한 우렁이 새끼들이 엄마 품을 파고드는 그 경이로운 모습을 우리 한교닷컴 독자분들께서도 보셨다면 아마 크게 기뻐했을 겁니다. 왜냐, 마음이 여린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어떤 제어할 수 없는 환상에 빠지거든요.
아무튼 어제는 나날이 푸르러지는 녹음을 맘껏 감상하며 우리 아이들도 부디 저 녹음처럼 일신우일신 하기를 빌어본 뜻깊은 하루였답니다. 독자여러분께서도 잠시 틈을 내어 유월이 가기 전에 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