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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잘 노는 아이는 성격도 좋아요

성격이 좋은 사람이 최고랍니다

"21세기형 글로벌 리더는 성격 좋은 사람이 최고입니다. 한 마디로 품격있는 리더십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모여 일하기 때문에 리더의 인품이 보다 중요해진다는 뜻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21세기에는 리더가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그 모호함을 인정하고 참을성 있게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지시와 통제는 되레 독이 될 수 있으니, 인품을 보여주는 리더가 성공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2008 글로벌 인재(HR)포럼에서, 세계적인 HR(인재)전문가 플래튼 왓슨와이어트 대표가 한 말입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체험적으로 느끼는 것이 성격이나 성품이 좋은 아이들에게 호감이 가고 정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교사로서 아이들의 성격에 따라 편애를 해서는 곤란하지만 교사도 사람이기에 그렇다는 뜻입니다.

공부를 잘 해도 까탈스럽거나 골을 잘 부리는 아이들보다 약간 수줍음이 있는 듯하면서 차분하고 겸손한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모둠 활동도 잘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줄 줄 알고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하며 말을 하니까요.

요즘 아이들은 어느 집에서나 한 자녀 가정이거나 두 자녀 가정인 경우가 많아서 집에서부터 자신을 참고 양보하거나 상대방을 이해하는 훈련이 덜 되어서 그런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부터 너무 귀하게 키워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고 참는 연습이 덜 된 채, 학교라는 공동체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공부를 가르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끼리의 다툼이나 의견 대립으로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 참 힘듭니다. 요즘 아이들은 교실이나 복도에서 뛰고 소리지르고도 그것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에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지필 평가 시험지에 답은 잘 쓰지만 행동까지 옮기는 아이는 드뭅니다.

특히 자기 반 담임 선생님이 지도하는 시간보다는 방과후학교 시간이나 외부 강사 선생님들이 느끼는 고통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맘대로 지껄이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 하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자기 반 교실을 벗어나 다른 선생님 반에 가면 얼굴을 바꾼 채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성품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렇다고 매를 들 수도 없고 강한 꾸지람도 한 두 번이지 먹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시급한 문제는 영어몰입교육이나 지적인 능력 향상이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나 교양, 공중도덕과 같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을 강화하고 내면화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친절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피해를 주지 않는 언어 습관과 행동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친절한 성품은 최고의 미덕
법정 스님은 '친절은 최고의 종교'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의 친절은 사람은 물론이고 꽃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그 대상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온 세상이 환경오염으로 피괴되고 지구 곳곳에서 재해를 당하는 일도 어머니같은 대지를 함부로 대한 불친절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성품이 좋은 아이, 성격이 좋은 리더를 만드는 것은 결국 환경과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위적인 환경이 아닌, 최대한 자연스러운 곳에서 대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보고 자랄 수 있게 하는 일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년기는 자연과 소통하는 '유희적 우주'라고 강조하며 어른들로부터 "공부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도둑맞는 프랑스 아이들을 걱정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서정이 살아 있던 농촌 풍경 속에서 고향의 푸근한 인정과 형제애를 느끼며 자란 어른들은 힘들 때마다 그 '유희적 우주'를 떠올리며 위로 받고 찾아가는 회귀 본능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유희적 우주'를 잃어버린 슬픈 아이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아파트 숲 속에서, 갇힌 사각의 틀 속에서 자라 세상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각종 교육 시설에서 일찍부터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섯 살이 되기가 무섭게 아버지나 어머니와의 교감보다도 시설에 맡겨져서 오후 늦은 시각까지 보육이라는 이름 아래 틀에 박힌 삶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정규 수업 시간 외에 거의 4시까지 이어지는 방과후 수업으로 아이들은 지쳐 갑니다.

땅을 딛고 신나게 축구를 하거나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뛰노는 풍경을 보기 어렵습니다. 방과후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학원 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데려갑니다. 일터에 나가 바쁜 부모님, 그나마 온전하지 못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연로한 조부모님 손에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먹고 사는데 문제는 없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가난합니다. 일찍부터 부러진 날개를 숨기고 사는 아이들은 공격적이고 눈치를 보기에 바쁩니다.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서툽니다. 유년기의 '유희적 우주'를 상실한 채 경쟁적인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시골 아이들이라 해도 흔한 풀이름이나 꽃이름도 모르고 곡식 이름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가난해도 나름대로 '유희적 우주'를 지녔던 어른들의 어린 시절보다 더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마음이 아픕니다. 동네에 아이들이 귀하니 같이 놀 친구도 없는 아이들, 돌보아 줄 부모는 밤 늦게 귀가하거나 글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 알림장조차 읽어주지 못하는 아픈 현실 속에서 가난과 좌절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어린 영혼을 다독이고 격려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불확실성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실력과 자신감, 성격이 좋은 사람, 긍정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만 학교와 가정이라는 쌍두마차의 바퀴 한 쪽이 온전하지 못한 아이들은 늘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방 좌절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습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정으로부터 어린 시절에 확립되어 있어야 할 기본신뢰감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끝없이 사랑하고 보듬어주며 격려하고 안아주어야 할 어버이라는 둥지를 잃은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라도 노는 시간을 줘야 해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평생을 살아갈 자양분이 되어줄 어린 시절의 '유희적 우주'를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 줄 대안은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도록 중간놀이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보내는 일, 친구들과 쪽지 편지를 주고 받게 하는 일, 간식을 같이 나누어 먹게 하는 일, 모둠 학습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일, 협동하는 놀이나 민속 무용을 함께 하며 우정을 쌓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노는 아이, 친구들과 잘 놀 줄 아는 아이는 성격이 좋은 아이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참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야 함께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잘 노는 아이들을 칭찬해 주곤 합니다. 먼 후일 2학년 꼬마들이 담임인 내 이름은 잊더라도 함께 자란 친구를 떠올릴 수 있는 유년 시절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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