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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산골 분교야, 잘 있니?



<그리운 아이들-2005년 10월 7일 가을운동회 축하공연을 마친 산골분교 전교생>

내 인생의 전환점
"교감선생님, 00분교 근무를 희망합니다."
몇 년 전 2월 말, 나는 돌발적인 선택을 했다. 학교 측의 만류가 심했지만 내 뜻을 관철했다. 학교라는 조직도 결국은 인간 관계의 도로망이 촘촘하게 얽혀있다. 그 해 여름 나는 그 도로 위에서 세련되지 못한 나의 처세술로 마음의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퇴직과 휴직 사이에서 내린 결론은 내가 숨쉴 배경만을 바꾸는 '일탈'을 선택했다.

3년 동안 가족을 떠나서 가장 단순하게, 느리게 살기를 원하며 자연과 아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지리산 아래 분교로 숨어 들었다. 아내를 멀리 두고 살아야 하는 남편의 불편함도, 어미의 손길이 필요했던 자식들보다도 내 영혼의 치유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나를 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탈'이었으며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새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산을 닮아 깨끗하고 아름다운 아이들과 나눈 3년 동안의 속삭임을 글로 남기며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의 청빈한 삶을 흉내내며 살았다.

자연 속의 아이들과 나눈 사랑, 영원한 그리움으로

틈만 나면 아이들과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즐거운 공부를 꿈꾸었고, 사진을 찍어 전송하며 밤을 새워 기사를 썼다. 3년 동안 2권의 교단 에세이를 출간하여 아이들과 나누었다. 아이들과 자연 속에 온전히 빠져서 살았던 그 일탈의 시간은 내 후반인생의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제 그 곳을 떠나온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고향의 언덕처럼, 아버지의 비음 섞인 음성처럼 그리운 곳이 되어 나를 불러낸다. 아이들과 함께 다슬기를 잡던 계곡,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 덮인 시골 교회에서 전교생이 바이올린 공연을 하며 행복했던 일, 장애우들을 초대하여 산골분교 작은음악회를 열었던 일 등,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이야기들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살아있다.
 
도망가듯 찾아 들어간 산골 분교에서 아이들과 나눈 그 사랑의 마시멜로를 한 조각씩 음미하면서 이제는 조용히 내려서는 그날을 조심스럽게 준비한다. 내 그리움의 원천이 된 피아골 계곡의 분교에서 꿈꾼 일탈이 있었기에 오늘도 더 아름다운 교실을 꿈꾸며 살아간다.

눈물나게 그리운 그곳처럼 나를 만난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을 가꾸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내 인생의 아름다운 진주조개로 영롱한 빛을 발하는 피아골 연곡분교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서 세상으로 날아간 아이들의 날갯짓을 응원해 주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산골 분교야! 너 지금도 잘 있는 거지? "



        <마음 속의 고향-2005년 12월 21일 폭설이 내린 분교 운동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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