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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학력진단평가업무 개선방안 모색을 촉구한다

김유신 설화에 김유신이 천관녀(天官女)라는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에 빠지자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고 그 뒤로 그녀를 멀리 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했을 때 말이 평소의 습관대로 그녀의 집으로 가자 아끼던 명마(名馬)를 죽였다는 일화를 잘 알고 있다. 현대소설로 [차라리 내 목을]이라는 소설 속에 천관(天官)과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황순원에 의해 말[馬]의 독백체로 전개된다.

사람의 언어나 행동거지, 음식물 섭취, 흡연도 계속 반복하면 고치기 힘든 특성이 되거나 질환으로 고착되어 심한 금단 현상을 겪지 않는가. 교육을 책임지는 우리 교육공무원 모두, 특히 전국적인 시험을 출제하고 관리에 종사하도록 선발된 사람들은 시험과 관련해 털끝만큼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며 새로운 변동이 생기면 수험생에게 미리 충분한 적응기회를 주어야 한다. [차라리 내 목을]의 주인공 김유신의 애마처럼 오랜 기간 길들여진 교육현장의 학생을 평소와는 많이 달라진 방법으로 평가받게 하지 않도록 당부한다.

12월 23일 치른 학력평가 실시 과정에서는 미리 예방하지 못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실수와 이해하기 힘든 황당하고 불만스러운 10가지 난맥상을 정리한다. 감독교사 유의사항에는 **교육청에서 1,2학년 시험을, **교육청에서 3학년 시험출제를, 인쇄는 **교육청에서 했다고 나와 있다. 교사평가가 거론되고 있기도 하지만 학력평가 출제 수준에 따라 기관도 등급을 매겨야 할 판이다. 앞으로는 무한책임 출제 감독을 위해 학생 시험지에도 주관 교육청을 밝히도록 하든지 대대적인 학력진단평가업무 개선방안 모색을 촉구한다.

첫째, 학생 지참물 중 평소 정확한 답안 마킹과 잦은 컴퓨터용 답안지 교체의 예방을 위해 예비 마킹에 늘 사용해 오던 플러스펜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지시는 수험생을 더욱 긴장시킨다. 답을 고칠 때마다 감독 교사까지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두 번 실수는 할 수 있는데 컴퓨터 채점 오작동을 막기 위해 학생 실수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발상 어이가 없다.

둘째, 답란 수정은 양질의 수정 테이프 사용만 허용된다면서 준비 지도에 철저를 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단 하루 시험을 위해 테이프를 준비해 온 학생은 극히 드물었다. 테이프로 고치는 데 길들여 있지 않았고 학교에서 미리 준비해서 수정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용지나 필기구도 걸핏하면 OMR, OCR 답안지가 다르고 필기용구가 컴퓨터용 수성싸인펜, 컴퓨터용 B연필로 다르던 때가 종종 있었다. 진단평가만이라도 아무 필기구나 다 사용하지 못할 바엔 한 가지로 통일했으면 좋겠다.

셋째, 감독 유의사항 유인물에도 없고 시도담당자 회의에서도 없었다는 긴급 전달 내용은 학교, 학반, 번호 마킹란에 9번이 아예 빠져 9번 19번 29번 학생의 답안지 작성은 8번 아래 좁은 빈 란에 억지로 마킹을 하라는 지시였다. 0번부터 9번까지 당연히 있어야 할 숫자인데 어찌하여 9번이 빠졌으며 잘못된 답안지 내용을 편집, 인쇄 검토과정에서 왜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는지, 또 시험 직전에라도 발견해 답안지를 교체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섯째, 학교 학반 번호 코드는 그렇다 치고 특기자, 특수대상자 표시도 이런 시험만의 답안지에서만 볼 수 있는, 당사자로는 밝히지 않고 싶은 개인 신상 정보이다. 또 남녀 표기를 빠뜨리는 학생, 성명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분해 쓰는 일도 습관이 안돼 실수하는 학생이 더러 있어 개선이 요구된다.

여섯째, 몇몇 단답형 문항의 답이 8, 40일 경우 해당 없는 백자리 십자리에는 0표시를 하지 말라는 지시 또한 평소 학반 번호 마킹에서는 1반은 01, 8번은 08로 표기하도록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절대 실수하지 않도록 긴장 시키는 지시가 아닌가.

일곱째, 평소 정확한 성적처리를 위해 어김없이 결시자의 경우 결석 종류별로 작성하여 함께 제출하도록 길들여진 것과는 달리 결시자 답안지는 회수하지 않는다는 지시도 있다. 진단고사니 학력평가니 하는 시험은 종종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여덟째, 문제지 회수는 하지 않으니 편했다. 종종 문제유출 방지라는 구실로 모조리 거둬가는 관행에 길들여진 교사로서는 단지 이후에라도 제발 일관성 있게 문제지 거두라는 지시는 없길 기대할 뿐이다.

아홉째, 가채점답안지 별도 제출.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점수를 컴퓨터 처리 전에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편리하고 반가운 일이지만 답안지를 하나 더 작성해 제출한다는 것이 해당 학교의 주문인지 교육청 주문인지는 모르나 평소에 습관화 되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열째, 학생 전체의 학력을 진단 측정하고 전국적인 비교분석 평가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문제의 신뢰도 타당도 난이도가 적정 수준이라야 한다. 이번 진단평가 3교시 사회 과목의 경우 정해진 시간보다 20분~15분전에 90% 이상 학생이 답안 작성을 끝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쉽거나 어려웠다는 예감이다. 과연 전국적 학력수준을 평가할 수 있었던 적합한 문제를 출제했는지 의문스럽다.

어떤 반 아이들은 성적이 안 좋아 잘못하면 방학 때 따로 남아 공부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열심히 시험에 응하더라는 교사의 말처럼 내신 성적과 관계없이 진지하게 치른 시험이었다는 사실 덧붙이고 싶다.

학생들은 김유신의 애마가 아니다. 평상시의 자세와 분위기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평소 자주 보던 시험지와 답안지로 문제를 대하고 익숙해진 방법으로 응답할 권리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출제나 시험관리 잘못으로 지금까지 교육된 익숙한 요령이나 행동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요구하여 그 결과 학생에게 불이익이 왔다면 마치 김유신이 늘 가던 데로 갔다가 목이 베인 애마의 신세가 된다. 교육자는 선후를 살펴 경계하고 삼가는 심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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