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7월 중순경이었다. 교무실 옆자리에 앉은 어느 선생님한테 한 학생이 찾아왔다.
"선생님, 오늘 야자 감독이시죠? 야자 조퇴 좀 시켜주세요."
"음…. 어디가 아프니? 그럼 먼저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하렴."
"저…. 선생님이 바로 제 담임선생님이신데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리포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을 짓던 당사자인 담임선생님과 그 학생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3월초에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형편이라 사실 반 학생들을 완벽하게 기억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시점까지 반 학생들의 면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칫 무성의한 담임으로 비쳐질 염려가 있다.
얼마 전, 한 잡지사에서 인기 있는 선생님의 조건에 대한 여론조사를 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선생님과 싫어하는 선생님의 유형 중 각각 한 가지씩을 무기명으로 자유롭게 써내게 하여 가장 많은 답변부터 순위를 매긴 것이었다.
1위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 수업을 아주 재미있게 하여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2위가 항상 학생들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하고,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이었다. 3위는 박학다식하며 수업 기술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선생님으로 나타났다.
반면, 싫어하는 선생님 유형으로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무조건 체벌만으로 해결하려하거나, 항상 찡그린 얼굴로 학생들에게 욕을 하는 선생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외의 답변으로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항상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선생님, 성적만 가지고 학생을 판단하며 또 공부 잘하는 학생만 편애하는 선생님, 돈과 물질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선생님, 수업을 할 때 자습서를 그대로 베끼거나 정답만 달달 외워서 가르치는 선생님, 학생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선생님, 인사를 해도 무시하거나 아예 받지도 않는 선생님, 수업 종료령이 울려도 계속 수업하는 선생님, 억양에 톤이 없어 지루한 느낌을 주는 선생님 등이 있었다.
리포터는 여론조사를 보면서 이 시대에 교사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일선 학교들은 교원능력평가다, 성과급이다, 학교평가다 해서 이만저만 뒤숭숭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다 이제는 학생들의 눈치와 학부모들의 눈치까지 심지어는 동료교사들의 눈치까지 살펴야하니 바야흐로 눈치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러다가는 눈치가 하늘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치'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눈치만 있으면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듯, 두루두루 눈치를 잘 살피는 일은 자기발전과 학생들을 위해 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치란,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학부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찾아내어 그들을 만족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제는 교사 중심적이고 강압적으로 학생들을 대하던 시대는 분명 사라진 것 같다. 따라서 눈치를 잘 봐서 자기발전은 물론 목적하는 소기의 교육적 성과도 거둬야겠다. 그러려면 우선 학생들의 이름을 잘 기억해야겠다.
'사람의 이름은 주전자의 손잡이와 같다'라는 카네기의 명언처럼 사람을 움직이려면 우선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전자를 옮기려면 그 손잡이를 잡아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사들이여, 부디 학생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자. 그리하여 누구누구야, 하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자.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눈치를 잘 보는 비결이고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는 첩경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