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명심보감 계선편(선행에 대한 글)의 첫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繼善(계선)은 '선행을 이어나가라' '선행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꾸준히 착한 일을 이어나가라는 뜻이다.
이 繼善篇(계선편)에는 10문장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의 첫 문장이 ‘爲善者(위선자)는 天報之以福(천보지이복)하고, 爲不善者(위불선자)는 天報之以禍(천보지이화)이니라’이다. 이 문장의 뜻은 ‘선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주느니라’이다. 공자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그러면 善이 과연 무엇일까? 善의 뜻을 한자 자전에서 찾아 생각해 보았다. 그 중 하나가 ‘착하다’는 것이다. 착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또는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착하다는 것은 결국 올바른 것,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인군자들이, 선조들이, 지도자들이, 선생님들이 말하는,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던 ‘올바르게’ 사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올바름이 바로 착함이다. 그러니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善이란 ‘좋다’는 뜻이 있다. ‘좋다’는 것은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훌륭하여 만족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말은 하는 일이 훌륭하여 만족할 만한 것을 많이 하라는 뜻이 된다. 좋은 일은 결국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유익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 ‘좋다’라는 말의 뜻 속에는 자신의 성품이나 인격을 원만하게 다듬어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자신의 모난 성품이나 인격이 원만하지 못하고 모가 나게 되면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성품을 갈고 닦기 위한 인성교육이 결국은 선을 행하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善이란 ‘아끼다’의 뜻이 있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아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기, 물, 종이 하나까지도 아끼는 것이 좋은 일, 선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쓸데 없이 낭비하는 것보다 아껴서 필요한 자가 필요할 때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선한 일이 되는 것이다.
또 善이란 ‘친하다’의 뜻이 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사람과의 친함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이가 좋음을 말한다. 친구와 친하고, 부모님과 친하고, 형제와 친하고, 선생님과 친하고, 자연과 친하고, 이웃과 친하는 것이 바로 선을 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결국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들이 많으면 학교의 분위기는 되살아나게 된다. 행복하게 된다. 만족을 느끼게 된다.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다. 학교에 오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된다.
爲不善者(위불선자)가 많으면 그와 반대가 될 수 있다. 친구와 친하지 못하고 원수같이 지내면 학교의 분위기는 살벌하게 되고 말 것이다. 학교에서 언어폭력 등 각종 폭행이 일어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계의 좋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악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행동이 따를 수가 없다. 선한 것은 작은 것이라도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된다.
공자께서는 위불선자에게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준다고 했는데 악한 자라고 하지 않고 위불선자라고 한 것은 악을 강조한 것이 아니고 선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악보다 선에 초점을 맞추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