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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자장면’과 ‘짜장면’ 그 이상한 괴리

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바다 근처 중국집에 가서 목놓아 울부짖는 파도소리나 실컷 들으면서 자장면을 먹으면 환상적이겠다. 

어제는 모처럼 동료 선생님과 점심 때 외식을 했다. 하도 학교 밥만 먹다보니 딴 생각이 슬그머니 들어 외도를 한 셈이다. 찰나의 점심 시간인지라 멀리는 가지 못하고 학교 앞 중국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요량으로 출입문을 밀었다.

점심 시간에 중국집 바쁜 것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오늘따라 사람들이 콩볶듯한다. 마침 추적추적 장마를 재촉하는 비까지 내리니 아주 중국집이 불이 난 모양이다.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켜놓고 무료를 달랠 겸 차림표를 바라보니 눈에 거슬리는 표기가 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난자완스 등등 그 중에서 유독 리포터의 눈길을 잡는 표기가 있다. 바로 '짜장면' 나는 으레 국어교사란 직업병이 발동하여 손가락으로 차림표를 가리키며 자장면이 맞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강생은 함께 온 후배 선생님이다. 앞에 앉은 선생님은 내 설명이 재미있다는 듯 눈동자를 반짝이며 듣기 시작했다.

"자장면은 중국어로 자지앙미엔(Zhajiangmian·炸醬麵)인데 외래어 표기법에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ㅉ'을 쓰지 않고 '자장면'이라고 표기해야 해. 자장면의 어원이 중국의 작장면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식 된장인 작장(炸醬)에 면(麵)을 넣어 먹는 음식을 뜻하지. 약한 불에 볶거나 기름에 튀긴다는 뜻이기 때문에 더욱 자장면으로 불러야해."

물수건을 나누어주며 리포터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던 중국집 종업원이 갑자기 우리들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아니 5000만 국민이 다 '짜장면'이라고 발음하는데 뭣 때문에 '자장면'이라고 발음해야해요? 나아~ 참 어이가 없어서."

순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5000만 국민이면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발음한다는 뜻이 아닌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격이다. 나는 궁여지책으로 다시 한번 맞춤법 규정을 들먹이며 그 종업원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 외래어표기법에는 현지발음을 가장 존중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외래어 중에서 아예 된소리로 그 단어의 표준어가 바뀐 것이 존재합니다만, 자장면은 그대로 표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자장면으로 발음하셔야 합니다. 중국집에서 일하시는 분부터 정확하게 발음하셔야죠."

하면서 멋쩍게 웃어넘겼지만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어쨌든 현실성이 떨어지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정이든 된소리는 좋지 않다. 된소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언중들의 심성이 순하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큰 전쟁을 겪고 난 후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보게되면 이를 금세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우리말에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유독 많이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은 '소주'를 '쏘주'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고, 이제는 이도 성에 안 차는지 아예 '쐬주'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는 모처럼 집사람과 함께 재래시장에 들렀다. 여기저기 제철에 나온 풍성한 생물들이 손님들에게 간택되기를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어느 어물전 앞에서 갈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아주 멋지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저기 '칼치' 한 마리만 주세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름답고 순하게 생긴 여성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거친 발음이 나오나… 한참이나 그 여인을 바라보다가 아내의 손에 이끌려 시장을 빠져나온 적이 있다. '칼치'는 분명 잘못된 발음이다. '갈치'로 해도 의미전달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의 잘못된 발음은 전국의 휴대전화 매장에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붙여 놓은 공짜가 아닌 '꽁짜'에도 그대로 부합된다. 주꾸미를 '쭈꾸미'로 발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표기법에 어긋나는 자막이 버젓이 화면에 나타나는 일도 많아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쥬스(juice'), '초콜렛(chocolate)', '케익(cake)', '계란후라이(鷄卵fry)', '돈까스(豚カツ)', '야끼만두(やき饅頭)'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각각 '주스', '초콜릿', '케이크', '계란프라이', '돈가스', '야키만두' 등으로 고쳐 적어야 바른 표기가 된다. 물론 이 중에서 '계란프라이', '돈가스', '야키만두'들은 각각 '달걀지짐', '돼지고기 너비튀김', '군만두' 등으로 다듬어 쓰면 더욱 좋겠다.

아울러 언어정책을 담당하는 분들도 이제는 고리타분한 규정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맞춤법을 서서히 손봐야할 시점에 온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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