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났다. 미술 시간에 아예 준비물을 일체 해 오지 않아도 좋다. 단지 다른 친구에게 피해만 주지 않아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옆에 앉아있는 여자 아이가 정성들여 쓴 글씨에 붓으로 먹칠을 하여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쓴 것이 소용없게 되었다. 벌써 여러 번 경고를 주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여자 아이는 울고 있는데, 또 엉뚱한 곳에 가서 장난을 치고 있다. 1학기 때에만 하여도 몇 명의 아이들이 장난이 심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수업은 할 만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반 아이들 대부분이 말대꾸를 하면서 장난이 심하여 제대로 수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화가 나서 장난치는 아이들 세 명은 앞으로 나와서 앉아 있으라고 하였다.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앞에 나와 앉아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아이들을 향해 손짓 발짓을 하며 더 장난을 심하게 치는 것이다. 수업분위기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고 서로가 돌아다니면서 자랑스러운 듯 떠들고 장난만 하고 있다. 화가 나서 벽을 쳐다보고 앉아 있으라고 하였더니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다. “야! 벽을 쳐다보고 있으라 했는데, 너는 어디를 쳐다보고 있냐?”고 하였더니, 저 뒤쪽에 있는 벽을 쳐다본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이번 시간이 일정대로 끝나야 다음 시간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데, 계속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화가 벌컥 났다.
“야! 임마, 어떻게 하려고 이러냐? 아~이그~” 하면서 죽비로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이제는 선생님이 욕을 하고 때렸다며 달려든다. 선생님이 ×새끼라고 하며 때렸는데 무척 아프다는 것이다. 하도 기가차서 “야!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함께 벌서는 아이한테 물어보았더니 분명히 하였다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는 한 술 더 떠 선생님이 때려서 지금도 아프다는 것이다. 제 3자가 들으면 꼼짝없이 ‘×새끼라고 욕을 하면서 죽비로 때린 것’으로 밖에 인식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업 시간은 끝 나가는데 어이없는 아이들의 행동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 어느 누가 초등학교 순진한 아이의 말을 믿지 나의 말을 믿겠는가.
이제 우리 교육자들은 ‘교원 평가권을 갖고, 교육적 벌마저 줄 수 없고, 학생인권 조례’라는 큰 힘을 가진 제자들의 앞에 서 있다. 또한, 흐트러진 학업 분위기 심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학부모들의 항의가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 교육청의 지침과 학생, 학부모의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교사가 자긍심을 갖고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지 염려스럽다. 교수권과 학생지도권의 약화와 상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자는 ‘포퓰리즘 정책’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자적 신념으로 지금껏 그래 왔듯이 잘못된 길을 가는 제자들을 결코 외면도, 포기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 생활지도를 하던 담임 여교사의 머리를 주먹으로 몇 차례나 때린 '패륜'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충북 제천의 한 고교에서 남학생이 자신을 꾸짖는 것에 불만을 품고 40대 여교사를 폭행한 사건과 전남의 한 중학교에선 50대 여교사와 여학생이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또, 경기도 어느 중학교에선 말 듣지 않는 학생을 교사가 112에 신고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학교의 살풍경스런 모습은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이어 11월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이 모든 초·중·고에서 체벌을 전격 금지한 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래도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금지 때문에 학생들의 반항과 저항이 생겨 교실이 붕괴한다는 건 무리한 추정"이라며 "체벌은 물론이고 언어폭력까지도 학교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교육감은 우리 교육현장의 아이들 상황을 제대로 잘 알고 집행하려는지 묻고 싶다. 이미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 금지 조치와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공포 등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학생에 의한 일련의 교사폭행 사건은 우리의 교육이 어디로 가려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엄청나게 교육에 재정적 투자를 하여야만 하고, 특별한 교육정책을 추진하여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교육현장에서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고 교육공동체가 서로 믿고 함께 할 때 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진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