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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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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겨울나기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어떤 아름다움과 더불어 마음에 화평을 가져다주는 자연을 기대하곤 한다. 그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가슴 찡한 감동을 안겨줄 풍경을 기대한다. 그런 여행이야말로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달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해수욕장과 여름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찾아간 신두리의 겨울은 차분하고 명상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겨울바다의 진수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는 아스라이 해안 사구가 펼쳐져 있고 짠 냄새 섞인 파도 비린내가 상쾌하게 머릿속을 파고든다.

쓸쓸한 수평선과 바다 냄새. 아, 이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충분했다. 이처럼 위대한 바다 앞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까 싶다. 쏴-아 쏴-아 파도소리만이 인적이 없는 겨울바다를 위로하고 있다. 파도소리에 이끌려 해변으로 들어선다. 하얗게 펼쳐진 백사장을 밟는다. 발 밑에선 뽀드득 뽀드득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름답다! 해변에 홀로 선 나에게 이미 언어란 형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가슴은 쉴 사이 없이 고동치고 울렁이고 떠들어댄다. 문득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뜬금 없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삼라만상이 한 곳에 머금게 되었을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든다. 신두리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렇게 나를 사색하는 철학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시 백사장을 가로지른다. 뽀드득 뽀드득 명사(鳴砂)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소리만으로도 모래가 얼마나 부드럽고 깨끗한지 느껴지는 듯하다. 피서철이 끝난 뒤끝이라 해변은 한껏 정적에 싸여있다. 가끔 가다 들리는 짝 잃은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파도소리뿐 사방은 외로울 정도로 고요하다. 간간이 눈에 띄는 여행객들도 옷깃을 깊숙이 여미고 그저 파도를 따라 묵묵히 걷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사라진 해변은 고적한 단점이 있는 대신 장점도 많다. 신두리 해변의 고운 모래가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파도가 들어왔다 나간 자리는 마치 고운 빗자루로 훔친 듯 세밀한 물결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신두리 해변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파도가 정말 밤손님처럼 살그머니 왔다가 살그머니 떠난다. 그래서 더욱 아련해지는 신두리 해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그저 내버려두는 겨울바다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있다.






신두리 해변에는 또 한가지 자연이 빚은 신기한 조형물이 있다. 바로 해안 사구가 그것이다. 해안 사구란 해안에서 해류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파도에 의해 육지로 밀려 올라온 후, 큰 모래언덕을 형성한 것을 말하는데, 그 모래언덕에 갖가지 동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더욱 신기한 느낌을 준다.
 
겨울사구에서는 온통 회색빛 옷을 입은 식물들이 겨울바람에 대책 없이 흔들리고 있다. 해안 사구는 서해안 중에서도 신두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해변의 끝자락에서 다시 큰 언덕을 형성했다가 다시 육지로 내려갈수록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이곳 사구지역의 습지에는 환경부가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한 맹꽁이, 금개구리, 구렁이 등이 서식하고 있고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등도 해안사구 지역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전형적인 생태관광지로서도 가치가 있는 지역이다. 또한, 폭풍이나 해일로부터 해안선을 보호하면서 인간과 사구 생명체에게 지하수를 공급하는 유익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겨울 한낮에 찾아간 신두리의 해변을 나는 아주 오래도록 걸었다. 마치 늙은 소가 한겨울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음식물을 반추해 다시 씹는 것처럼 그렇게 곱씹으며 걸었다. 하지만 겨울 해는 노루꼬리처럼 짧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바다는 벌써 시나브로 검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쉽지만 서둘러 신두리 해변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에 달빛이 아주 고운 날에 신두리 해변을 다시 찾기로 했다. 그때는 달빛을 벗삼아 하늘에 떠있는 총총한 별도 헤아려보고 싱그러운 밤바다의 냄새도 지치도록 맡아보리라.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나의 욕망을 여과 없이 분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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