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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1)

선생님, 지금쯤 선생님이 누워 계신 신사동 도산공원 사거리에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겠군요. 제가 근무하는 이곳 서산에도 아침저녁으로 냉기가 가득한 칼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선생님, 저는 충남 서산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335명의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랍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기상천외한 일들이 쉴 사이 없이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일상이지만, 나름대로 그 속에서 소박한 재미와 행복을 찾으며 즐겁게 생활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년교사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도산 선생님께 들려드리고 또 선생님의 조언도 구하고자 하오니 잠시만 시간을 내어 제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경성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한(恨) 많은 삶을 마감하신 지도 어언 72년이나 흘렀습니다. 72년이면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뀐, 무척이나 오랜 세월입니다. 변한 것이 어디 강산뿐이겠습니까. 세상도 정말 많이 변했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답니다. 세계 20개의 강대국 정상들이 우리나라 서울에 모여 세계의 경제와 질서를 논의하는 회의를 가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명실 공히 세계의 주역으로 우뚝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외국의 원조물자로 겨우 연명해가던 우리가 이제 세계 선진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오매불망 바라시던 한민족의 번영이 바야흐로 우리 안전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지하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셨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이라도 한판 추셨을 겁니다.

선생님께선 살아생전 우리 후손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며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고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할지 직접 본보기가 되어 가르쳐주신 위대한 민족의 스승이셨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60평생을 혁명의 제단에 바치셨으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모든 사람의 이상적 본보기가 된 위대한 애국자이며 교육자이셨습니다. 때문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것일 겁니다.

절망 속에서나 희망 속에서나 늘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선생님! 그래서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사상과 일화를 들려주며 선생님의 삶을 닮도록 지도하고 있답니다.

언젠가 한번은 교실을 청소하다 휴지 두 개가 떨어져 있기에 바로 앞의 학생에게 줍도록 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천천히 허리를 굽히더니 휴지 한 개만 줍더군요. 그래서 제가 왜 바로 옆에 것은 안 줍느냐고 했더니 그 학생 왈, "선생님이 이것만 주우라고 하셨잖아요?" 하며 의아한 듯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요즘 학생들은 철이 없고 생각이 없다는 걱정들을 많이 하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사실 저도 그날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5교시 수업시간, 저는 아무리 진도가 바빠도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께서 미국에 건너가 청소부로 일하시던 경험담을 들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번은 어느 미국인 저택에서 한 시간에 1달러씩 받기로 하고 청소아르바이트를 하시던 때가 있으셨죠. 대부분의 다른 청소부들은 품삯을 받은 만큼만 대충대충 청소를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청소도구까지 만들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청소를 하셨습니다. 마치 자기 집을 청소하는 것처럼, 아니 하나님의 성전을 청소하는 수도사처럼 성스러운 모습이셨다고 합니다. 이런 선생님의 모습을 베란다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집주인은 큰 감동을 받아 선생님께 다가와 여쭈었죠.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그때 선생님께서는 자랑스럽게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비록 이역만리 미국 땅에 가 계셨지만 선생님의 마음속에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불타고 있었기에 가능한 답변이셨습니다. 선생님의 당당한 대답을 들은 그 주인은 처음에 약속한 1달러보다 훨씬 많은 12달러를 주며 이렇게 말하였다지요.

"당신은 청소부가 아니라 참으로 성자입니다. 앞으로 계속 우리집 청소를 맡아주세요."

선생님께서는 이처럼 작은 일에나 큰일에나 가리지 않고 모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학생들이 선생님의 이런 정신을 본받는다면 휴지 두 개 중, 달랑 한 개만 집어 드는 학생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선생님, 선생님께선 평소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더라도 거짓이 없을 것이며, 행여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선생님께서 어렸을 적 겪었던 어떤 체험 덕분이었죠.

어느 해 여름, 참외가 몹시 드시고 싶었던 선생님께선 다짜고짜 원두막으로 달려간 뒤

"우리 할아버지가 저를 때리려고 쫓아오시니 제발 저 참외밭 속에라도 숨겨주셔요."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참외밭 주인에게 매달리셨죠. 인정이 많았던 참외밭 주인은 선생님을 참외밭고랑에 숨겨 주었고, 기회를 얻은 선생님께선 참외밭에 엎드려 실컷 참외를 드셨죠.

그러나 선생님의 입에 참외씨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참외밭 주인은 당신께서 속은 것을 알고 선생님의 어머님께 이런 사실을 고했고, 선생님의 어머니께서는 부지깽이가 두동강이 나도록 선생님의 종아리를 때리며 훈계하셨습니다. 이후 선생님은 다시는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라는 선생님의 사상은 이때부터 비롯된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허나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도 없지만 남의 물건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의 물건, 예를 들면 핸드폰, mP3, PMP, 전자사전, 손목시계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가져다 자기 것처럼 쓰곤 합니다. 소위 말해서 절도지요. 이런 학생들이 생길 때마다 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일화를 들려주며 왜 남의 물건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 설명하곤 한답니다. 이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선생님의 주장처럼 좀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도산 선생님!

선생님께서 상하이에서 한창 독립운동을 하실 때였죠. 상하이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의 따님이 생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소녀에게 생일 전에 꼭 참석해 축하해주겠노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공교롭게도 선생님의 소재를 파악한 일본경찰이 선생님을 체포하기 위해 거리마다 헌병을 배치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죠. 주변 사람들은 선생님께 어서 몸을 피하시라 권유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어린 소녀와의 약속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위험을 무릅쓰고 소녀의 집에 갔던 선생님께서는 그만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이후 큰 고초를 겪으셨죠.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선생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글자 한 자를 쓰더라도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매사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셨던 선생님의 사상으로는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약속 하나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라의 독립 같은 큰 약속을 이루어낼 수 있었겠습니까.

선생님, 지금 우리 국민 모두가 선생님처럼 약속과 신의를 목숨처럼 지킨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사회가 될까요. 아니 저부터 생각과 행동을 바꾸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조의 탓, 무능한 정부의 탓, 일본인의 탓만 하며 자포자기하는 한국인들을 꾸짖으며 이 모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 때문임을 자각하라고 일갈(一喝)하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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