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제 며칠만 지나면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가고 새로운 2011년이 시작되네요. 특히 올해는 국치를 당한지 어언 100년이 되는 해라 더욱더 생각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또 이때쯤이면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수능이 끝난 고3 교실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입니다. 단정하게 교복을 갖춰 입은 학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위에는 체육복 아래는 찢어진 청바지. 그도 아니면 옷인지 아닌지 잘 구별도 가지 않는 이상한 옷을 입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일제 강점기와 같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왜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옷차림에 그토록 각별한 신경을 썼는지 고3 학생들이 안다면 감히 이런 복장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람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제일먼저 옷차림부터 흐트러지듯이, 의관은 그 사람의 정신 상태와 인격을 나타내주는 척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해 항상 단정한 차림으로 생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 또한 늘 양복과 넥타이, 중절모를 깨끗하게 차려입는 멋쟁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단정한 옷차림이야말로 바르고 정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정신집중의 첩경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죠.
선생님의 옷차림과 관련된 몇 가지 일화들을 살펴보면서 저는 선생님의 바르고 곧은 성품과 거기에서 나타나는 의관정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간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인삼 장수들이 한인거리에서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한인 최초의 교회인 상항연합감리교회와 한인친목회 및 공립협회를 설립하는 등 한국사람 간의 상부상조에서부터 조국의 해방을 위한 단결심 고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인 사회를 지도하셨죠.
선생님께서는 한국인들을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며 동포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일일이 교포들의 집을 방문해서 지저분한 집을 청소해 주고, 꽃밭을 가꾸는 등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러자 교포들도 감화되어 마침내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등 점차 건강하고 단정한 생활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포들의 생활방식이 변하게 되면서 미국인들로부터 받던 야만의 시선도 점차 사라졌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처럼 단정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자주독립에 대한 지조와 신념을 지키셨던 것입니다.
또한 항상 단정하고 멋쟁이셨던 선생님의 주변에는 선생님을 흠모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평소 선생님을 사모하던 최 모라는 여성이 몰래 선생님의 침실로 들어와서는 선생님 곁에 누웠죠.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불을 켜라'고 말한 뒤 '나에 대한 이런 열정이 있다면 그것을 조국에 바치라'고 말한 뒤 돌려보내셨죠. 그 뒤 그 신여성은 누구보다 열심히 대한독립을 위해 매진했다고 합니다.
글을 맺으며…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의 4대 정신을 주창하며 일제 지배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민족 독립 국가를 세우고 민족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온 생애(59년 4개월)를 바친 행동의 지성인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겨 놓으신 그 위대한 인간상과 숭고한 생애, 불멸의 인격과 치열한 삶, 남에게는 더없이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던 실천적 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우리 민족이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항상 기억될 것이며 지도자로서의 귀감으로 우리 역사 속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저 역시 선생님의 이러한 사상과 실천적 정신을 만 분의 일이나마 본받도록 노력할 것이며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인물을 키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가르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추운 계절에 부디 저승에서나마 영면하시고 먼저 가신 천만 조령님들과 함께 우리 민족을 음우(陰佑)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