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촌지' 선생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감감한 그였지만, 포스터에 쓰인 '촌지킬러 불량 티처 고군 분투 오지 탈출기' 라는 한 줄 짜리 카피가 그로 하여금 극장의 문턱을 넘게 만든 것이었다. '촌지킬러 불량 티처' 라…. '죽은 시인의 사회' '언제나 마음은 태양' 같은 작품은 이제 만들지 않는 모양이구만. '선생 김봉두' 라는 제목이 '선생 김봉투'로 보일 만큼 안촌지 선생의 입맛은 떨떠름했다.
영화가 시작됐다. 돈 봉투 밝히던 서울의 한 불량 교사가 강원도 오지 분교로 전근을 간다. 영월 산내 분교의 다섯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봉두는 어떻게든 서울로 다시 돌아가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옆자리의 학생이 "우리 담탱이 같지?" 그러며 킬킬거린다. 내가 이 영화를 왜 보러왔지. 돈주고 욕먹으러 온 셈이니 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김봉두인지, 김봉투인지가 밉상으로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오랜 병치레 끝에 죽어 가는 아버지.
그 것만으로 그가 봉투 밝힘증 환자가 된 이유까지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학교 소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픈 사연이 있음을 공감하게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는, 20년간 산내 분교에서 근무하다 심장병이 도지고 나서야 떠났다는 전임 교사도 안촌지 선생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래, 저렇게 존경할 만한 교사도 있는데….
안촌지 선생은 눈을 감았다. 시골 아이들에게 아양떨듯 눈을 흘겨가며 충동질하는, 세 사람 말투로 바꿔가며 혼자 고스톱을 치는, 너무도 뻔뻔하고 속물스런 김봉두의 모습은 어쩌면 반성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 자신과 닮아있는 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항상 좋은 선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골분교에서의 추억이 김봉두 선생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위력을 발산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다섯 아이의 마음과 검댕 묻은 얼굴이 눈에 밟힐 때면, 좀더 착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그랬듯 착해지고 싶다고 느낀다면, 그 역시 '좋은 선생님'의 길로 한 발 다가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얼마나 좋은 말인가. '좋은 선생님'. 올 교육주간의 주제도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던데….
요즘 같은 교육개혁의 목소리가 거센 시기에, 촌지 밝힘증 교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맘에 들진 않지만, 안촌지 선생은 극장을 나서며 이 영화를 주변에 권하기로 맘먹었다. 타락한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도 선의가 살아있음을 잠시라도 믿게 만드는 영화라면, 영화로서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 나 안촌지. 여지껏 그랬듯 '휴money스트' 가 아닌 진정한 '휴머니스트, 좋은 선생' 이 되도록 애쓰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