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서 크는 고3 교실
다시 3월입니다. 학교는 지금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선생님도 꽃샘 추위 속에 맞이하는 새로운 출발이 낯설어 허둥대고 힘들어 할 때입니다.
어쩌면 일년 중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첫 단추를 끼우는 소중한 출발점이 바로 3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현직교사인 내게 어느 때보다 마음의 준비가 더욱 절실한 때이기도 합니다.
내 생각의 크기가 나와 인연이 되어 만난 아이들의 1년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숨고르기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의 선택도 매우 신중해지게 됩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도서관에서 고른 책은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제목부터 아픈 이 책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어버이의 모습이 투영된 교실 일기
그것도 바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쓴 교단일기라는 점이 더 마음을 끌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프고 지친 아이들, 소외되고 힘든 아이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망가져서 기댈 곳 없는 제자들입니다.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마음대로 공부하고 싶어도 그 길을 갈 수 없어 일터에 내몰려 공부하는 즐거움마저 빼앗겨 버린 슬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아니 살아남는 방법을 몸으로 가르치고 함께 울어주는 스승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소리 없는 울음으로 제자들 곁을 지켜내는 한 선생님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은 거울이 되어 다시 나를 비추어 보게 했습니다. 과연 나는 내 제자들의 눈물을 얼마나 닦아 주었는지,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아픈 아이들과 함께 눈물 섞인 밥을 함께 먹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어버이의 마음, 자식을 기르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아이들 곁에 결코 서 있어서는 안 되는, 단순히 직업인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없는 깨우침으로 나를 두드렸습니다.
특히 현직교사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진솔한 글이기에 더욱 신뢰가 가는 글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글은 바로 정직함과 진솔함에서 나온다는 게 글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이 책의 작가인 문경보 선생님이 제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발을 담그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 보낸 시간과 절절한 마음의 기도가 이 책을 덮은 지금도 귀에 들립니다.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게 시작하는 서문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결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실화들이 우리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아픈 가족사를 안고 사는 제자,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즐비한 오늘의 현실을 드러낸,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가슴으로 품으며 아파하는 공교육의 현장이 행간마다 튀어나와서 읽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공교육은 죽었다고, 교실을 때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지금 학교는 세상에서 날아오는 돌팔매를 맞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공교육은 죽었다고 입만 열면 손가락질을 하는 그들도 자식을 학교에 보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지탱해 온 기둥은 바로 교육의 힘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문화는 칭찬에 인색하고 작은 잘못에는 돋보기를 들이대고 더 크게 확대 해석하여 소문을 내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조직이건 인간이 만들어 낸 곳에는 장점만을 지닌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인 나 자신부터 그러하니 내가 지닌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부단히 노력하며 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물며 그 인간들이 모여서 만든 모든 조직도 단점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학교라는 조직도 예외일 수 없으니 학교를 구성하는 선생님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구조적인 단점을 고치는 것은 많은 시간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제 생각은 그럽니다만) 공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더 따스했으면 합니다. 학교라는 조직 자체가 정직과 가르침이 수반되는 특성 상 어느 조직보다 자정 기능이 우수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튼튼하게 바치고 있는 이 나라의 교실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문경보 선생님들이 아픈 상처를 보듬고 고개를 숙인 채 운명과 싸우는 아이들을 위해서 희망의 불씨와 싹을 틔우고 계십니다.
그러니 공교육은 죽었다고 소리를 높이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봄을 앓는 아이들'을 단 한번만이라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모조차 도울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봄꽃을 피우기 위해 겨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늘에서 표나지 않게 그들을 위해 애쓰는 노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성적 제일주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경제 우선 물신주의,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 그들은 패배주의에 갇혀 발버둥조차 치기 어려운 거미줄에 걸려 신음합니다. 그런 부모를 둔 아이들이 얼마나 애절하게 속울음 울며 납작하게 엎드려 봄을 기다리는지 이 책은 잘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제자들을 뒤에서 응원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교실 풍경을 만들어가는 인간적인 부성애가 흘러 감동에 젖게 합니다.
공교육은 결코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봄을 앓는 아이들>은 흔한 교단 일기가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아픈 아이들의 몸부림이 벗은 나무의 상처처럼 훤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겨울을 지나는 나목이 결코 죽은 나무가 아닌 것처럼, 봄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문경보 선생님의 자상한 건드림에 알 속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기지개를 켜는 줄탁동시의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교실마다 학교마다 건강하게 봄을 앓고 일어서서 싱싱한 여름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봄을 앓는 아이들> 문경보 지음/생각의 나무